쥬시이치카라
비가 추적하니 내려 암회색으로 하늘을 온통 뒤덮은 것을 잠자코 지켜보고자 하니, 마음이 잔뜩 심란해져 견딜 수가 없었다. 이틀 전부터 예보에서는 꽤나 긴 기간 동안 비가 올 것이라고 예보하였지만 결코 우산을 챙기지는 않았으며, 그저 돌아가는 길만이라도 비에 흠뻑 젖은 채로 동화되고만 싶었다. 망연히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바라보다 걸음을 옮긴 곳은 신호등이 없어 다소 난잡하다고 여전히 이야기가 잦았던 횡단보도로, 이치마츠는 한참을 그곳에서 벗어나지 않고서 자리를 지켰다. 그럼에도 제 나름대로의 생각은 있는 것인지 꽤 긴 시간을 넋을 놓다 곧 정신을 차리면 이치마츠는 눈에 보이는 건물 어느 곳에나 들어서 누군가를 기다렸다. 끝에는 자신이 바라던 사람이 아닌 카라마츠라고 하여도, 결국에는 돌아서 서서히 거리를 벗어났다. 딱히 그가 형제들을 회피한다던가 자해를 하는 등의 행위는 하지 않았기에 신경쓰지 않아도 될 것이라 누군가가 언질하였지만 그것을 아는 이는 사실상 있을리가 만무했다.
오래 전, 정확히는 4년 전 화물트럭과 부딪혀 사고로 죽은 쥬시마츠를, 카라마츠는 매우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반쯤 정신이 나가 무작정 바닥에 코를 박고 엎어진 그를 질질 끌던 이치마츠 또한 잊고자 하여도 쉬이 잊혀질 리가 없었다. 쥬시마츠는 쓰러진 이래 다시 일어나지 못했으며 상당한 충격을 받은 듯한 이치마츠는 그 뒤로 일시적인 실어증에 걸려 말을 하지 못할만큼 괴로워 하였다. 말을 하지 못하는 그를 위해 노트와 펜을 쥐어주자 가장 먼저 적어내린 것은 ‘살아서 미안해’라는 저 스스로를 질책하는 문장이었으며, 정신적인 충격으로 매번 약물까지 복용하며 일 년을 가까이 헤어나오질 못하던 이치마츠는 결국 스스로 정신 병원에 입원하여 삼 년을 가까이 학교도 다니지 않고서 가족들과 별거하였고, 그가 스무 세가 되던 해 부모님의 강제적인 퇴원 절차 아래 이치마츠는 여전히 불안정한 채로 재차 가족들과 함께 지내게 되었다. 그 후에도 이치마츠는 간간 쥬시마츠를 떠올리는 듯 하였으나 점차 말수가 줄어 결국 현재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일이 없었다.
“이치마츠.”
지붕 위로 올라가 잠자코 넋을 놓고 있던 이치마츠가 고개를 들어 저 아래에서 제 이름을 연호하는 카라마츠와 눈을 마주했다. 다행히도 오늘은 기분이 좋은 모양인지 시선을 피하지 않고서 눈을 말똥히 뜨고 있는 모습에 카라마츠는 먼저 슬며시 미소 지었다. 4월이 훌쩍 다가와 봄의 날씨가 되어 화창한 햇발에 부스스 눈을 뜨고서 2층 안방 문을 열면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이 벚나무 가지인지라, 형제들 모두가 그것을 달가워 하였다. 그 중 이치마츠는 가장 안 가지에 눈독을 들여 얼마 전 카라마츠가 직접 그것을 꺾어다 주었으며, 그것은 방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서랍장 위에 전보다 바짝 마른 형태로 장식처럼 놓여 있었다. 이치마츠는 최근에 들어 방 구석 한 켠에 있을 적에도 꾸준히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고, 또 가끔씩은 자신만 들릴 정도로 작게 탄식하기도 하였다. 카라마츠는 벚나무 가지가 마른 것이 불만인가 하여 새 가지를 꺾어 주었지만 얼마 후 그것은 결국 쵸로마츠가 다시 배접을 하고 있었으며, 이치마츠는 여전히 가장 처음 꺾은 가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4월 초순이 가장 벚꽃이 만개할 시기라, 가족들은 이른 새벽부터 분주히 나들이를 갈 준비를 하여 오전 아홉 시가 된 시각에는 벌써 짐을 전부 꾸린 채로 나갈 채비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 전 날 작은 몸살을 앓아 따라가고자 했던 마음을 일찍이 접은 카라마츠는 잔뜩 신이 난 가족을 배웅해주고서 못 이룬 잠을 더 이루기 위해 아직 이부자리가 너저분한 안방으로 들어가 눈을 감았다. 그래도 한 번 뜬 눈을 다시 감기가 어려워 얼마 못 가 눈을 뜨고서 헛웃음을 홀로 짓는데, 문득 제 시야로 얼굴을 이불로 반 쯤이나 가린 이치마츠가 고요히 잠을 이루고 있는 것이 보였다. 꽃놀이도 가지 못하고 집에 남아있는 것이 가련하여 그에게로 손을 뻗은 카라마츠가 단정히 이치마츠의 잔머리를 정리해주려 하자, 방금까지 온전히 잠을 이루던 이치마츠가 갑자기 그 손길에 팍, 인상을 찌푸리며 괴로운 듯 신음하기 시작하였다.
놀란 카라마츠가 재빨리 그의 손을 붙잡고서 어쩔 줄을 몰라하자, 얼마간 짧게 신음하던 이치마츠는 삽시에 상체를 일으켜 카라마츠에게로 두 어 걸음을 물러섰다. 미처 보지 못하였으나 이치마츠가 누워있던 자리에는 소변을 지린 흔적이 있었으며 이치마츠는 악몽이라도 꾼 것인지 고개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서 몹시 불안해 하였다. 카라마츠는 한참을 방황하는 이치마츠를 지켜보다 곧 그의 손의 떨림이 멎는 듯하자 한달음에 다가가 그를 안았고, 이치마츠는 일말의 반항조차 하지 않고서 얌전히 그의 품 안으로 고개를 묻었다. 무슨 악몽을 꾸었는지는 모르나 당장은 이치마츠를 달래는 것이 우선이었으며, 여전히 놀란 그를 대신하여 이불 손빨래까지 마치고서야 겨우 카라마츠는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이치마츠는 이미 한참 전 여벌의 옷으로 갈아입은 후 이따금 훌쩍거리며 저만치에서 얇은 담요와 함께 쪽잠을 이루고 있었다.
‘너무 잘 해주는 것도 좋지않아. 저 형, 가끔 형을 쥬시마츠 형이라 생각하는 것 같으니까.’
사실은 비참한 얘기였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죽은 그의 발밑에마저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건 시초부터 예상하고 있었기에, 카라마츠는 애써 태연자약 하였다. 오히려 자신을 투영하여 쥬시마츠를 보아 위안을 받고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었다. 카라마츠는 제 방 구석에서 지쳐 잠이 든 이치마츠를 바라보다 문득 머릿 속을 지나쳐가는 무필요한 상념들을 배제시키며 창문 근처에 겨우 자리를 잡았다. 온난한 햇살이 머리 위로 살포시 나앉는 것이 잠시 심란했던 마음을 달래주는 것 같아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한참 햇빛을 쬐다 잠시 잠에 든 것인지 카라마츠가 어느새 더워진 제 머리를 매만지며 부스스 눈을 떴다. 전 날의 몸살 때문인지 평상보다 더욱 노곤해져 쉬이 움직일 여력이 나질 않아 여전히 벽에 등을 기대고서 그저 벽시계의 분침이 움직이는 것을 유심히 바라보던 중 카라마츠는 어느새 이치마츠가 깨어 있다는 것을 느꼈다. 담요로 꽁, 제 큰 몸을 반쯤 감싸고서 바라보고 있는 이치마츠에 카라마츠는 잘 잤냐는 듯 암묵적으로 미소 지었고, 그저 눈만 말동히 뜨고 있던 이치마츠는 스윽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벽을 향한 채로 등을 돌렸다. 카라마츠는 무엇이라도 그에게 대화를 건네고자 하였으나 그것은 아직 서로에게 무리임을 깨달은 카라마츠는 결국 식사라도 차리기 위하여 어색한 기류 속 무거운 몸을 일으켰고, 주방으로 들어서기 전 벽에 걸린 앞치마를 들었다. 그에 이치마츠는 얌전히 등을 돌려 잠시 머뭇거리다 주방으로 나서려는 카라마츠를 향해 작게 입술을 오물거렸다.
“카라마츠.”
그의 말 한 마디에 이미 한참 몸을 주방 쪽으로 향했던 카라마츠가 놀라 삽시에 이치마츠를 응시하였다. 이치마츠는 똑바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으며 여전히 할말이 남아있는 것인지 꾸준히 시선을 놓지 않고 있었다. 정확히는 어떠한 말을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었으나 그것이 카라마츠에게는 닿지 않았으며, 마침내 지쳐 카라마츠가 더욱 가까이 걸음을 옮기자 이치마츠는 평소보다 선명히 목소리를 울리고 있었다.
“기분은 어때?”
이치마츠가 무엇을 묻고자 하는지는 명백했다. 카라마츠는 순간 놀라 본인도 모르게 다가서 이치마츠를 껴안았고, 이치마츠는 찰나 반동으로 잠시 물러섰지만 다행히 거부하는 등의 행동은 없었다. 어찌나 대견하였는지 한참을 품 안에 안고 있던 카라마츠는 자신은 아무런 문제도 없다며 다정히 대답하였다. 그러자 이치마츠가 스윽 얼굴을 붉히며 담요 사이로 고개를 묻으니, 카라마츠는 얼른 다른 생각이 들기 전에 일어나 자리를 피하였다. 좀체 서로 다가갈 생각을 않았기에 식사는 그로부터 두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해결할 수 있었다.
*
“보는 건 예쁜데, 치우는 건 지겨운게 뭔지 알아?”
“…벚꽃말인가?”
정다아압. 바닥에 눌러 붙기라도 하면, 정말로 지겨우니까. 굳이 마당 앞을 청소하고 있는 카라마츠의 앞에 자리잡고서 느긋하게 만화책을 펼친 오소마츠가 여러 상념에 잠겨 계속 같은 곳을 반복해서 쓸고 있는 카라마츠를 잠시 바라보다 곧 다시 만화책으로 시선을 옮겼다. 몇십 분을 계속해서 같은 곳에 우뚝 서있는 카라마츠와 시선은 분주히 만화책을 따라 움직이지만 고작 한 쪽 밖에 넘기지 않은 오소마츠는 서로를 꾸준히 의식하는 듯 하였지만 단 한 마디도 그 오랫동안 오고가지 않았으며, 일변 불어온 바람으로 인해 한켠으로 몰아두었던 벚꽃잎들이 다시 마당을 어지럽히자 겨우 정신을 차린 카라마츠는 재차 빗자루를 들었다. 그에 요지부동이었던 오소마츠가 슬며시 상체를 일으켜 반쯤 몸을 걸친 채로 마당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으며, 등을 보인 채로 여전히 다른 위치에서 같은 곳만 쓸고 있는 카라마츠는 어째선지 어딘가 몹시 불편해 보였다.
“카라마츠.”
“……아?”
“네가 보기에는 말이야. 이치마츠는 요즘 어떤 것 같아?”
난데없는 그의 질문에 황당하여 헛웃음까지 터뜨린 카라마츠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 의미를 물었다. 그러나 곧 아무런 미동도 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슥 뒷머리를 훑은 카라마츠는 몇 번 빗질을 하다가, 곧 요지를 모르겠다며 고개를 젓는 채로 대답을 부정했다. 오소마츠는 그 모습을 유유히 바라바도 수긍하겠다는 듯 몸을 작게 굼실거리며 다시 만화책으로 시선을 옮겼지만 좀체 동공은 움직일 기미도 보이지 않은 채 한 곳에 머물러 있었으며 언제든지 카라마츠가 대꾸를 하면 받아줄 준비가 되었다는 듯 신경은 마치 온통 그를 향하는 듯 하였다. 그로 인해 한참을 먼 너머로 시선을 돌려 회피하던 카라마츠가 영 무시하지를 못하겠으니, 결국은 땀을 삐질 흘리며 결국에는 오소마츠를 응시하였다.
“물론 이전보다야 낫겠지.”
“아니아니~ 그런 진부한 것 말고. 이상적으로.”
그 아이에게 이성적으로 통찰할 수 있는 감정이 아직 남아있기는 할까. 카라마츠는 결국 알고 있지 못하다고 답하였고, 그것을 납득한 척 오소마츠는 고개를 실룩였지만 여전히 무언가가 불만스럽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아마 여섯 형제들 중에서 가장 심중을 아는 것이 어려운 이는 이치마츠 다음으로 과연 오소마츠였다. 못 배운 척 무식한 티를 내고 다녀도 학창 시절에는 전교 중위권을 웃도는 성적이었으며 집으로 데려와 압설하게 놀 정도로 친했던 질이 나쁜 친구들을 갑자기 배척하며 대뜸 주먹을 휘둘러 전교를 소란스럽게 만들었던 이유도, 단지 싫증이 났다는 원인에서부터 였다. 그만큼 카라마츠에게는 복잡했던 오소마츠가 이러한 것을 묻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홀로 한참을 생각하고자 했지만 의외로 정답은 무척 간단했다. 간만에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는 듯 얄궂은 얼굴을 하고있던 오소마츠는, 곧장 그 답을 마치 기밀이라도 되는 마냥 슬그머니 일러주었다.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부쩍 너만 찾고 있거든.”
“…오소마츠. 정말 그것 뿐이라고만 생각하는거야?”
“으응, 아니 별로. 할말은 많지만 안 할래. 그냥,”
몸 조심이나 잘 하라고. 먼저 들어가 보겠다는 듯 손을 휘휘 저으며 돌아가는 시늉을 하는 뒷모습을 용케도 잠자코 바라본 카라마츠는 당장이라도 그의 멱살을 잡고 싶었으나 가까스로 제지하였고, 그저 한숨만을 푹 내쉰 채 빗질을 하던 손에 더욱 힘을 쥐었다. 오늘따라 암운이 유난히도 짙었다. 비가 오기 전 널어놓았떤 빨래라도 거두어야겠다 싶어 이상 쓸어보았자 소용이 없을 마당을 방치하고, 마당과 연결된 창호를 건너 돌아가려는 찰나 이미 윗층으로 올라간 줄로만 알았던 오소마츠와 저만치에서부터 눈이 마주쳤다. 무슨 용무라도? 그보다 앞서 비딱하게 선 채로 묻자 감감히 지켜보던 오소마츠는 결국 먼저 고개를 젓고서 등을 돌렸다.
“곧 있으면 비 온대.”
“…아아.”
“바람난 이치마츠도 알아서 좀 데려오고.”
그러고보니 오전부터 통 보이지를 않던 이치마츠를 미처 신경쓰지 못하고 있었다. 넋을 놓은 채로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마당 어느 곳에 빗자루를 놓아두고 째깍 흘러가는 벽시계를 바라본다. 시각은 이미 정오를 한참 지나 어느덧 세 시를 가리키고 있었으며, 벌써 일석이라도 성큼 다가온 것마냥 어두워진 하늘에 카라마츠는 서둘러 바깥으로 나섰다. 비가 올 것을 이미 한참 전 알고 있기라도 했다는 듯 종적을 감춘 이치마츠가 어디로 향했을지는 사실 훤했기 때문에, 걸음을 낭비할 걱정은 일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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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시마츠는 울고 있었다. 두 눈에서 눈물을 왈칵 쏟는 채로 참 서럽게 울던 그는 애써 지나가고자 하였던 카라마츠를, 정확하게 주시하고 있었다. 그의 맞물렸던 입술은 서서히 벌어졌으며, 또한 조심스럽게 카라마츠의 이름을 속삭였다. 카라마츠는 애써 시선을 마주하지 않은 채 제 감정을 추스리기라도 하는 듯 슬그머니 두 주먹을 꼭 쥐었다. 그들이 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카라마츠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들은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 정확한 시초는 여전히 울음을 쏟고 있는 저 여린 소년으로, 유순한 성격으로 인해 반 친구들의 궂은 부탁을 들어주다니 어느새 가장 밑바닥까지 몰락하게 된 쥬시마츠를 차마 이치마츠는 혼자 내버려둘 수 없었을 것이다. 이치마츠는 약했다. 늘 토도마츠와 쥬시마츠의 앞에서는 늠름한 척 하여도 결국 그들이 무서워하는 것은 한결같이 무서워 했으며, 대체로 모두가 그러하듯 조용하고 원만한 학교 생활을 원했다. 그러했던 이치마츠가 단번에 돌변하여 쥬시마츠를 감싼 것은, 감히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이치마츠 형이 나 때문에 많이 아파.’
쥬시마츠 역시 몸에 성한 곳 하나 없었다. 얼마 전에는 스스로 자해라도 시도한 것인지 손목에는 절창 자국이 가득하였으며 매번 눈 밑이 퀭한 것이 잠조차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날마다 잠을 설치는 것 같았다. 쥬시마츠는 이를 다른 형제들에게 알리지 않고자 이치마츠와 함께 동아리를 씨름부로 옮긴 탓에 부상 당한 것이라며 난데없는 거짓말을 하고 다녔으며, 그것은 가장 이 상황을 방관하였던 카라마츠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과도 연관이 있어 보였다. 그나마 형제들 중에서 가장 책임감이 있고 의리가 충만한 쵸로마츠가 있었지만 그는 학교 회장으로서 오히려는 학교 일로 밤을 지새는 일도 더러 있었기에 (이는 쥬시마츠와의 성격도 연관이 있다. 그는 바쁜 누군가에게 참견을 부탁할 정도로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감히 쥬시마츠는 쵸로마츠마저 피해를 겪을까 다가서지 못했으며, 토도마츠는 물론 가장 여린데다 근심이 많았기에 자연스럽게 배제했을 것이 분명했다. 오소마츠 역시 진솔하게 표현하여 질이 낮은 친구들과 몰아다니며 악행을 저지르고 다녔으니, 결국 도움을 청할 곳은 카라마츠 외에는 없었던 것이다.
‘…이치마츠는?’
일단은 아무렇지 않은 척 그의 안부를 물으며 다가섰다. 쥬시마츠를 홀로 방치하고서 향했다면 그가 어디로 간 것인지는 물론 뻔하였지만 결국은 아닌 체 하였다. 애써 울음을 참는 듯 하였던 쥬시마츠는 결국 그의 이름을 듣자마자 다시 울음을 터뜨렸고, 카라마츠는 엉성한 자세로 그를 달래며 위로했다. 한참을 위안하며 그들에게 자신이 도와주겠다고 걱정하지 말라는 장담은 하였으나 사실은 이후에도 줄곧 그들을 방관하였으며, 결국 여전한 괴롭힘에 시달리던 쥬시마츠는 도중 거품까지 물고서 발작하여 대략 2주 간을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이치마츠 역시 당연한 듯 학교를 빠진 채로 그를 돌보았으며 회복하던 중 병원에만 있떤 것이 지겨웠던 모양인지 그들은 벚꽃이 만개하던 날 바깥으로 향했다. 그것은 유일했던 그들의 안락한 뒷모습이었다. 카라마츠는 그 이상 그것에 대해서 회상하고 싶지 않았다.
이치마츠는 쥬시마츠가 살아있던 도중 한 번 카라마츠를 책망하였다. 그 원인은 물론 그가 쥬시마츠를 도와주지 않았기 때문이었으며 더욱 심하게는 그를 거짓말쟁이라고 단정하였다. 이치마츠는 더이상 카라마츠의 관계를 지속하고 싶지 않다고 하였, 카라마츠는 그에 발끈하여 그들이 꾸준히 괴롭힘을 당한 원인을 자신으로 지목하는 것이냐며 되려 회를 내었지만, 무엇이 되었던 목하 사실이었다. 그 이후로는 둘 사이에 대화라고는 오고가지 않았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오소마츠와 바라보던 것과 같은 경멸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으며, 겨우 다시 대화를 시작한 시기는 쥬시마츠가 사고로 죽고서 일시적으로 실어증에 걸렸던 당일이었다. 카라마츠는 그제야 진심으로 사과하였고, 이치마츠는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핍박하고 경멸하던 상대를 죽은 그처럼 의지하는 것은, 여전히 괴로웠기 때문이었다. 이치마츠는 그 이전 카라마츠가 무엇을 했건간에 전혀 상관하지 않고서 그의 관계에 집착하였고, 결국 한계에 도달해서야 결국 카라마츠를 용서했다. 카라마츠는 오히려 그것이 더욱 죄악스러웠다. 냉정하고 침착했던 그가 삽시 몰락하여 납득하는 것은 자신이 바라던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신호가 혼잡하여 사고치레가 잦은 곳이라, 한 달에 적어도 네다섯 번은 충돌 사고가 일어나 동네 주민들도 웬만하여서는 그 도로로 오고 가지를 않는단다. 그와 덛ㅅ붙여 이치마츠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네게도 책임이 있다고 방정맞게 오소마츠가 지적하니, 놀라 토끼눈을 뜨던 이치마츠가 곧 평상대로 돌아오며 결국 납득했다. 때는 정신적인 문제로 이치마츠가 입원했을 초기, 오소마츠는 그동안 무리를 짓고 다니던 아이들과 싸움을 일으켜 통학 정지 처분을 받은 상태였다. 그런 오소마츠가 짓궂다고 생각한 카라마츠는 곧바로 일어서 중재하고자 했지만 오소마츠는 그에게 들을 충고 따위는 없다며 병실을 벗어났다. 상실감을 느낀 카라마츠가 비소를 흘리며 다시 간의 의자에 주저앉아 벙한 얼굴로 넋을 놓은 이치마츠에게 사과하자, 잠시 생기가 돌아온 이치마츠는 모호한 표정을 지으며 이리 중얼거렸다.
「미안해, 쥬시마츠. 그래도 내가 살아있지 않으면 안되니까.」
언제나 궁금했다. 쥬시마츠는 이치마츠에게 어떠한 존재일까. 단순한 형제, 혹은 형과 동생의 관계라고 하기에는 이치마츠는 그 이외에는 누구도 마음에 담아두고 있지 않았다. 사실은 이치마츠의 모든 관심사는 쥬시마츠였다. 자신의 청춘을 전부 반납할 정도로 쥬시마츠가 그리도 소중한 존재였을까.
얼마 전 고열을 앓아 쓰러진 이치마츠는 그러했다. 사경을 헤매면서도 쥬시마츠의 이름을 연호하며 곧 자신도 따라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놀라 꿈결 중에 중얼거리는 이치마츠를 지켜보던 카라마츠는 한달음 다가섰지만, 고개짓까지 하며 끊임없이 누군가와 대화하는 그를 보며 안심채한 로 슬그머니 물러서며 그가 잠잠해질 때까지 잠자코 지켜보았다. 이번에는 잘 이야기 했을까, 궁금하고 또한 안심이 되기도 하였지만 한 편으로는 절망적이었다. 그저, 그냥. 이유는 생각하고자 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지만 그다지 알고싶지 않았다.
이치마츠는 더이상 연락을 받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우산을 들고서 점차 빨라지는 걸음으로 도로 근처에 다가서자, 웬일이지 사람은 항상 드물던 곳에 듬성듬성 사람들이 들어서 있었다. 카라마츠는 그 자리에 우뚝 서서 주위를 살폈다. 반대편 도로에서는 사고라도 난 것인지 반쯤 부서진 오토바이와 한 쪽 면이 일그러진 채로 짙은 연기를 자욱히 뿜고 있었다. 경악하여 주변인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들보다 앞서 다가섰다. 딱히 이치마츠라고 장담할 이는 보이지 않았으며 작게 탄식할 뿐 어느 누구도 지나치게 몸을 떨 두려움에 떨고 있지 않았다. 조금 더 걷는 속도를 늘렸다. 사방을 돌아다니며 이치마츠를 찾았지만 그는 좀체 보일 기미가 없었으며, 곧 하늘에서는 작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입하를 알리는 소나기였다.
자신이 손에 들고있던 우산이 과연 무슨 용도인지도 잊은 모양인지 카라마츠는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삽시에 굵어진 빗줄기에 시야가 보이지 않았지만 멈추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이치마츠는 그곳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흠뻑 젖은 몰골로 잔뜩 웅크린 채 떨고 있는 이치마츠는 몹시도 가여웠다. 이따금 힉힉, 거리며 괴로워하는 것이 설마 과호흡인가 싶어 덜컥 그의 팔뚝을 붙잡으니 발작을 일으키며 극도로 손길을 거부했다. 나야, 이치마츠. 카라마츠가 다시 손목을 붙잡고서 이전보다 더욱 다정하게 답했지만 이치마츠에게는 닿을 리 만무해보였다.
카라마츠는 덜컥 객기가 생기어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이치마츠를 일으켜 끌다시피 도로로 향해 이끌었으며 마치 혼절할 듯한 그를 끌어안고서 그동안을 꼼짝않고 있었다. 차량 사고로 사방이 소란스러웠으나 아무도 그들을 간섭하거나 미처 신경쓰지도 않았으며, 숨을 껄떡대던 이치마츠는 점차 차분히 가라앉으며 마침내는 다시 큰 울음을 쏟기 시작했다. 그럼에 문득 바라보았던 그의 눈에는 4년 전 보았던 그 날에 대한 막연함과 두려움이 그득하였다.
이런 상황에 만약 쥬시마츠가 있었다면 그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하지만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그저 방황하는 두 손을 꼭 잡고서 집으로 돌아가자, 라고 이야기 한다면 아무리 이치마츠라도 순응하여 함께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카라마츠는 다급히 이치마츠를 붙잡고서 제 얼굴을 마주하게 하였다. 창백하게 푸르러진 그의 얼굴을 보니 절망스러웠지만 이제는 돌아가자, 라고 한 마디 내뱉으면 무산될 일이었다. 하지만 카라마츠는 단지 아른거리는 그를 향해 속삭였다.
“왜 난 안봐.”
카라마츠는 드물게 화를 내고 있었다. 이치마츠는 곧 우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한 얼굴을 하고서 말없이 고개를 숙였고, 곧 작은 몸을 가까이 기대며 이내 움직이지 않았다. 한 편의 영화를 찍는 것도 같은 기분이었다. 카라마츠는 얌전히 품에 안긴 이치마츠를 업고서 점차 집으로 걸음을 향하였고, 돌아가는 길에는 본인도 모를 황당함과 서운함에 실소를 그치지 못했다. 이미 비가 한 바가지 몰아 일찍이 외출을 하였던 가족들마저 돌아와 각자 제 할 일을 누비고 있었으며, 그 중 2층 베란다에서 홀로 담배를 피우던 오소마츠와 정말로 우연인지 눈이 마주쳐 그 잠시동안 제자리에 우뚝 섰다. 오소마츠는 태연히 줄어드는 담배를 보호대에 비벼끄고서 슬며시 미소지으며 입을 벙긋거렸다.
어서 와,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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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웃도는 열기가 몹시도 고단하다. 카라마츠는 체온계를 들어 자고 있는 이치마츠의 체온을 잰 뒤 채 몸을 가누지도 못하고서 바닥으로 쓰러졌다. 전 날 돌아와 씻는 것도 형제들에게 의지할 만큼 애를 먹은 그들은 식사도 함께하지 못하고서 종일을 앓았고, 결국은 보다 못한 어머니와 오소마츠는 죽이라도 끓일까, 하여 장을 보기 위해 집을 나섰다. 가족들 나름대로 걱정하고는 있었으나 그 잠시 깨어났던 이치마츠가 모두를 거부하는 탓에 병간을 해주는 이는 없었으며 이따금 열기가 벅찬 모양인지 쌕쌕거리며 괴로워하는 그를 제외하고는 방안은 몹시 고요하였다. 정오였지만 방은 마치 한밤이라도 된 듯 어두웠으며 어정한 자세로 엎어져 땀만 삐질, 흘리던 카라마츠가 곧 잠에라도 들 것 같아 반쯤 풀린 눈을 느리게 끔벅이고 있을 때, 장을 보러 간 그들이 돌아온 모양인지 현관에서는 북적한 소음이 일었다. 과자라도 산 모양인지 봉지 소리를 요란히 내며 거실 문을 연 오소마츠는, 잠들어있는 이치마츠와 카라마츠를 보며 고개를 잠시 갸웃거렸다. 너희, 아직도 자? 과자 하나를 바스락 씹으며 들어선 오소마츠는 계속해서 기웃거리는 채로 그들을 내려다보며 곧 거실에 드리운 커텐을 젖혔다.
“날씨는 이렇게나 좋은데, 우울하기 짝이 없게 커튼이라니.”
“…오소마츠.”
“지지리 운도 없구나~ 너희는. 바로 다음 날이 이렇게 화창한데!”
여전히 과자를 바스락거리는 채로 입을 오물거리던 오소마츠가 그 근처에 주저앉아 카라마츠에게로 과자 하나를 건네자, 상체를 일으킨 카라마츠는 여전히 인상을 찌푸리고서 서서히 고개를 저었다. 가만히 벌어지는 햇발에 조용히 눈을 감던 오소마츠는 곧 이치마츠를 불렀고, 여전히 잠들어있는 줄로만 알았던 이치마츠는 부스스 눈을 뜬 채로 오소마츠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묘한 웃음을 짓고서 멈추어있던 오소마츠가 입 밖으로 꺼낸 것은 놀랍게도 쥬시마츠에 대한 이야기였으며 잠자코 그것을 듣고 있던 이치마츠는 고개를 돌려 곧 작게 몸을 떨었다. 만나러 가자고? 쥬시마츠. 의외의 인물에게서 나온 의외의 발언이었다. 곧장 놀라 말조차 더듬던 카라마츠는 결국 승낙하였으나 한참을 대답하기를 망설이던 이치마츠는 끝내 거절하였으며, 황당하다는 듯 짧게 신음했다. 카라마츠는 그가 무엇을 이야기할까 한참을 바라보았지만 이치마츠는 대신 이불 사이로 얼굴을 깊이 집어넣었으며 오소마츠마저 체념한 듯 미소짓고 있었다.
“쥬시마츠가 외로워할텐데?”
“……나는, 나중에.”
“왜?”
짓궂게 묻는 오소마츠에 이치마츠는 탄식하며 스스로 일어서며 커텐이 걷혀진 창문을 활짝 열었다. 어느새 맑게 개인 하늘과 저 너머 부엌에서 들리는 냄비 끓는 소리에 늘어지게 기지개를 켠 이치마츠는 자신을 바라본 채로 주저 앉아있는 오소마츠를 향해 낮게 중얼거렸다. 창피하잖아. 놀란 듯 따라 몸을 움찔이던 오소마츠는 대답을 듣고서 망설이는 듯 고개를 기웃거리다 곧 픽, 헛웃음을 지었다. 그래, 그럼. 태연히 대답한 오소마츠는 이치마츠를 향해 쉬라고 작게 위로한 뒤 과자를 두고서 방을 나섰다. 그런 그의 뒷모습은 평상과 다를 바가 없었지만, 어째서인지 조금은 처연하게도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