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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츠다자

조드망 2017. 2. 5. 20:09










소년이 처음 그를 마주하였을 시기의 이는 제법 마른 행색을 하고 있었다오로지 난간에 몸을 기대고서 무념한 듯 자신의 너머만을 바라보고 있었으나 과연 홀로 초조해진 소년이란 한 차례의 망설임도 없이 돌연 그에게로 향하여 팔뚝을 붙잡던 것으로결코 소년이 다가설 차례까지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던 인물은 대뜸 붙잡힌 팔과 소년을 연신 번갈아 바라보며 하여금 미묘한 궁상에 취한 듯 하였다그것으로 한참 난간에 기대어 있던 종적이 결국 온전히 옥상 바닥을 밟게 되자 소년은 놀라 잠재적으로 붙잡고 있던 그의 팔을 놓고서 당혹감에 사과하며 연신 허리를 숙였으나 일말의 불쾌감이라도 호소할 법한 인물이란 기껏 자신의 팔을 매만지며 미묘히 반응하지 않을 뿐 이내 한 마디의 언사도 없이 소년을 지나치며 앞서 두 사람만이 남아 공적한 외부로 걸음하였다그것으로 한동안 미동하지 못하던 소년은 마치 전율이 끼치는 듯한 느낌을 불현듯 감각하며 어느새 뇌리를 한사코 메우던 배고픔마저 망각하였으니당장 옥상을 박차고 나서 여전히 음식 냄새로 가득한 학급으로 향하여 코를 박고 엎드린 경우마저도 텅 빈 속은 전혀 아려오지 않았다.

 




이를테면 소년이 옥상으로 향하였던 목적이란 더 이상 점심시간마다 학급에서 배를 앓으며 홀로 굶주리던 것이 심적으로 한계에 내몰렸던 것이 원인으로, 실상 소년은 천애의 고아로써 자신을 양자로 들였던 집안마저 실상은 소년의 보험금이 목적이었으니 소년을 방치하던 것은 물론이거니와 오히려 그들은 소년이 쇠약하여 병사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겨를이었다처음은 나름 소년을 아끼던 양할머니에게서 날마다 여럿 도움을 받아 식사를 해결하였으나 올해로 들어 고전하던 병세가 돌연 악화되는 것으로써 거동이 불가해지자 소년이란 양부모에 인하여 철저히 배재당하여어느새 그녀의 소식마저 단절이 되어 이 후의 행적조차 전혀 알 수 없었다그것을 기준으로 나날을 불문하여 이룰 수 있던 식사라고는 고작 배가 고파 잠들지 못한 새벽 중 몰래 부엌으로 나서 설사 들킬까 노심초사하는 채 제대로 씹는 것조차 못하고 넘기던 맨밥이 전부였기에 금전 또한 있을 리가 만무한 소년이 점심시간마저 도시락 냄새로 가득한 학급에 잔류하여 있는 것은 추위보다도 더한 고통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없을 것이라 단언했던 옥상으로는 소년이 나서기 시작하였던 이틀 전부터 빈번히 난간에 기대어 있는 낯선 이가 앞서 존재하였다. 처음은 소년의 위치조차 없는 것으로 치부하던 인물이란 제법 지나칠 적마다 시선을 주었으며, 나중은 관계가 발전된 것인지 굳이 대화를 걸어도 자리를 벗어나는 등의 행위 또한 더 이상 하지 않았다말의 수효가 드문 편은 결코 아니었으나 그는 타인과의 대화에 일절 관심이 없는 듯 하였으며 또한 소년이 있는 것을 의식하여도 소년이 앞서 대화를 걸지 않는다면 미련 없이 장소를 벗어났기에 실정 그와는 친밀한 관계는 아니었으나 나름 발전하고 있는 것이라 단정하던 소년에게는 간혹 서운한 감정마저 들기도 하였다그러나 당일의 경우에는 평소와 같은 시각임에도 늘 간담이 서늘한 위치에서 마냥 떨어질 듯 위태롭던 그는 일절 존재하지 않고 오직 여름따라 과하게 불어오던 바람만이 소년을 지나치고 있었으니소년은 왜인지 허전함을 느끼며 바닥에 몸을 뉘인 채 실상은 억지로 비좁은 하늘을 점차 우러러보았다.



배가 고프다. 실정은 이 생각 이외에 또렷한 발상을 할 수 없었기에 소년이 한참 굶주린 배를 쥐고서 노래하듯 홀로 독백하던 와중, 돌연 너머의 문호로부터 요란한 소음이 울리며 차츰 누군가 들어서는 듯한 기척이 들렸으나 소년에게는 전혀 그것을 확인할 의지나 여한이란 남아있지 않았다. 그러나 평소와는 다르게 상당히 번잡한 소음을 내며 소년의 곁으로 임박하던 그는 이내 빵과 다량의 음식이 든 봉투를 돌연 건네었으니, 평상의 사람 심리라면 전혀 그럴 성향이 아닌 듯한 인물이 건네는 음식을 의심할 법도 하였을테지만 소년은 결코 절제하지 못한 채 마구잡이로 봉투를 찢어 음식을 취식하였다. 중반 공복인 뱃속에 기름기가 돌연 들어차자 몇 번 헛구역질을 하기도 하였으나 소년은 전혀 개의치 않은 듯 하였으며, 결국은 삽시 음식을 해치운 직후 만족스러운 얼굴로 입가를 닦고나서야 뒤늦게 자신의 곁에 자리하여 그 광경을 빤히 바라보고 있던 이를 의식하였다.



으악! 이윽고 소년이 놀란 소리를 내며 다소 우스꽝스러운 광경으로 주저앉자 그는 방금까지 손을 댄 듯한 우유병을 자신의 옆 편으로 놓아두는 채 이내 차츰 소년의 곁을 향하여 자리 잡았다. 하여 마침내 몹시 당황하고서 한참 대화를 함구하던 소년이 용기를 내어 용케 그의 안위를 묻자 그는 단지 우유병만을 손아귀에 굴려 흔드는 것으로, 차마 그의 시선은 무언가에 상당히 매달리는 듯한 궁극한 느낌이었다. 늘 멀리서 바라보던 경우에는 미처 감각하지 못하고 있었으나 가장 측근에서 마주한 그는 이상보다 더욱 메마르고 공적한 느낌이었기에 소년은 그의 독특한 행색에도 불구하고 잠재적으로 숨이 막힐 듯 연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급기 그 다음의 기약은 즉일로부터 사흘을 지나친 정오 가량에 이루어졌다. 이전보다 더욱 황폐해진 낯빛으로 나타난 그는 목 언저리에 심각한 손톱 자국이 얼룩져 있었으며, 태도는 일관하여 오히려 처음보다 유순한 기색이었으나 실정 잠조차 이루지 못한 것인지 눈매마저 마치 흑백의 황혼에 취한 듯 짙게 물들어 있었다. 그는 그저 난간 너머의 풍경을 무엇이 쏟아질 것 마냥 맹렬히 응시하고 있었으나 문득 그것이 궁금하여 시선을 쫓아 그가 바라보고 있던 풍경을 완상한다면 그저 여럿 학생들이 삼삼오오 몰려 돌아다니는 평범한 광경 뿐, 도리어 한 눈에 알아챌 특별한 다른 무언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기어코 한참 무엇이라도 이루어질 마냥 그를 따라 정처없이 너머를 응시하던 소년은 이내 작게 기척을 내어 마치 대화라도 건넬 요령으로 넌지시 그를 바라보았다. 직전까지는 아무런 미동도 없이 잠자코 넋을 놓고 있던 그는 어느새 목 언저리의 흉터가 덧이 날 지경까지 반복하여 긁어내고 있었으며, 이내는 소년의 언사에 반응하는 채 점차 나직이 시선을 내렸다. 그 연유로 이후의 대화는 전혀 이루어지는 바가 없어 그와의 기류는 지나칠 정도로 막연하고 삼엄하여 숨을 내쉬는 것이 도리어 괴로울 정도였으니 소년은 무엇이든 즉각적으로 실천하여 불협한 그들의 공백이 무너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 그런데 다자이 씨는 어째서 늘 이런 곳에 계시는 거예요?


사실이었다. 과할 정도로 천진하였던 소년으로서는 단순한 관계 호전을 위한 악의 없는 질문이었으나 소년의 질문에 줄곧 무감한 표정으로 일관하던 이의 얼굴에는 점차 불쾌감이 만발하였다. 어째서 내 이름을 알아? 지레 겁을 먹고서 당황하는 소년에게 기어코 소리를 높여 물음하자 소년은 즉각 손가락을 펼쳐 그의 가슴께로 달린 명찰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전히 안색을 찌푸리고서 서서히 시선을 내리던 그는 이내 절반 가량이 지워져 좀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자신의 명찰을 바라보고서 황당한 이래 짧게 숨을 들이켰다. 다자이 오사무. 그저 평지 위에 온전히 두 발을 딛고 서 있을 광경조차도 위태로울 인물. 점차 손을 움직여 교복으로부터 명찰을 떼어 자신의 주머니 너머로 깊게 집어넣던 그는 이내 아무런 전적도 없었다는 듯 자약히 웃음을 짓는 채로 소년을 바라보았다. 소년에게는 그와 대화하는 이래 처음 마주하는 웃음이었으나 결코 의미대로 천진하거나 밝지는 않아 마냥 위화감을 느낄 즈음 그는 차츰 미소를 거두며 한사코 경직된 표정으로 더 이상 소년과는 시선조차 마주하지 않았다. 그러나 경과로서는 그의 매정한 행동이 오히려 소년에게는 더욱 온전하며 정교한 광경으로만 느껴졌기에, 소년은 도리어 일말 안심하는 기색이었다.





― 대답해줄게. 너를 위해서는 아니야.


마치 자신에게서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하지 말라는 듯 은밀히 경고하던 인물은 이내 손바닥으로 바닥을 딛고 일어서 출입문을 향하여 차츰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대꾸를 하거나 재차 말을 걸어도 쉬이 대답을 해줄 기색은 아니었기에 소년은 그저 멀어지는 뒷모습만을 바라보며 탄식하였으나, 이윽고 서서히 불어오는 바람에 직전까지 그가 날아가지 않도록 쥐고 있던 듯한 우유병이 요란한 소음을 내며 소년의 앞을 지나치고 있었다. 어느새 넋을 놓고서 빈 병을 따라 한참 시선을 배회하던 소년이란 마침내 그가 옥상을 벗어난 지 한참이 지난 이후에야 홀로 폭소에 가까운 웃음을 터뜨리며 방치된 병을 줍는 것으로, 소년은 어째서인지 그가 진솔하지 못하여 오히려 기특한 면모가 있는 인물이라고 느껴졌다. 그것은 실정 늘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한 소년에게로 점심 시간마다 빵과 우유를 가져다주는 그의 배려가 첫 번째 원인이었으며 대꾸는 곧잘 하지 않아도 자리를 벗어나지 않고서 소년의 대화에 귀를 기울여주던 것이 진솔하지 못한 그의 배려임을 짐작하던 두 번째 원인이었다. 그리 판단한 이 후로는 격한 즐거움에 사로잡혀 이미 옥상을 벗어난 지 한참 즈음이 되던 그를 향하여 연신 팔을 반복하여 흔들고 있었으니, 그것은 비로소 소년이 그에게 처음 느꼈던 난이의 초극이었다.









비틀비틀. 마치 취기가 오른 사람처럼 난간으로부터 비척거리는 걸음새를 보며 직전 옥상을 오른 소년은 다급히 쓰러질 듯한 그를 붙잡고서 지면을 향하여 한껏 체중을 실었다. 삽시 균형을 잃고서 바닥으로 엎지르던 그는 차츰 소년에게로 하여금 시선을 향하며 미묘히 웃음을 짓고 있었으나 그간 소년이 도달하기 직전까지 한참을 배회하고 있던 것이었는지 그의 안면은 이미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장장 그들로써는 한 달만의 재회였다. 이전 지나치게 몸을 혹사하는 듯한 그를 눈치 채고서 소년이 덜컥 화를 내었던 것을 계기로 그는 더 이상 옥상을 드나들지 않았으며, 결국은 소년조차 영양실조에 연관되어 한 달이 조금 되지 못하는 기간을 병원으로부터 나서지 못하고 있었으니 비록 재회는 조잡하고 난해하였어도 소년은 그저 더할 나위가 없이 반갑기만 하였다. 오랜만이에요. 그것을 연유로 결코 생각을 번거로이 걸치지 않고서 대화를 건네는 소년의 시선 끝으로는 여전히 일어날 기미가 없는 이가 몸을 납작 엎드리고 있는 것으로, 이내 소년은 방긋 웃는 기색을 하여 그에게로 점차 손을 향하였다.



늘 식사마냥 한적하게 들이키던 우유를 절반 가량이나 남겼다. 잘게 손을 떨어대며 병의 마개를 돌려 차츰 막음하던 그는 곧장 소년을 돌아볼 기색조차 하지 않은 채 옥상을 걸음하여 벗어났다. 그러나 과연 그의 행위는 우발적 혹은 단순함에 불과한 것이었는지 재회한 이 후로 그는 하루도 거르는 경우가 없이 꾸준히 옥상을 드나들며 소년과 교류하였으나, 성향은 이전보다 거칠어져 간혹 대화를 결여하지 않고서 앞장 서 공간을 벗어나거나 대화 자체에 관여하지 않는 등 소년의 심기를 불쾌하게 이르는 행동을 줄곧 자처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결국은 그는 이전과 지나치게 다를 것은 없다는 결론으로 단정하었으니 여전히 위태로운 광경으로 난간을 배회하는 그를 잠자코 지켜만 볼 수는 없어, 이내 소년은 그에게로 자신을 연신 강조하는 채 한 차례의 주의를 방안하였다. 자신의 어깨를 감싸고서 이끄는 소년의 양 팔에 붙들려 정처없이 몸을 휘둘리던 그는 또한 어느새 웃음을 짓고 있는 것으로 결국은 화를 내려던 소년마저 눈에 힘을 주어 한탄하는 채 나긋이 그에게로 속삭였다. 내가 있잖아요. 어느새 그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도 된 마냥 어깨를 당당히 하여 치켜세우는 소년을 마주하며 그는 단지 소년의 손길을 떼어내고서 차츰 주저앉은 자리로부터 걸음을 옮겼다. 소년으로써는 그 일말이라도 자신의 언사에 동감하여 융화될 법한 공감대를 자아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으나 이내 스스로 대답을 함구하고서, 이내는 대꾸하지 않는 그에게로 도리어 자신 혼자 그와의 관계를 다른 무엇이 될 수 있으리라 과장하며 단정하기에 이르렀다.

 

 

 

 

 

 

― 내 의지에 대해서 멋대로 종용하지 마.

 

두 팔로 나란히 바닥을 딛고서 하늘을 우러러보던 이는 이내 감정이 하나 일관되어 있지 않은 낯빛으로 소년을 향하여 시선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재차 어렴풋 지난 시기였다. 대화의 직전까지 소년은 질리다시피 마주한 빵을 한입 가득 베어 물며 공복을 해결하고 있던 것으로 이내 그의 대답에 놀라 당황으로 물든 채 결국 여러 번의 지독한 기침을 호소하였다. 그 이전 소년이란 최근 근심이 많은 듯한 그에게 관계에 관해 논하며 자신을 과시하였던 바, 대화 그대로 소년은 계절을 여러 번 지나치며 그와 교류하던 것을 이유로 그들의 관계를 타인들보다 돈독하다고 여기고 있던 사정이었다. 이를테면 유난히 말끔하게 정돈된 손톱 끝을 바라보며 소년이 변명하려는 대화조차 흥미가 없다는 듯 치부하던 그에게 소년은 재차 용기를 내어 자신이 없던 사이의 정황을 질의하였으나, 그에게는 여전히 관심이란 오리무중인 것인지 잠자코 소년의 질문에 대꾸하지 않았다.

 

 

결국은 입 안에 더러 남아있는 빵조각을 씹어삼키며 거북스레 손에 들린 봉투를 내려놓던 소년은 몹시 실의하였음에도 용케 그에게 관계의 여부에 재차 질문하였으며, 그는 단순히 흩날리는 바람결에 잠시 눈을 감는 채 마치 예측이라도 한 듯이 소년과의 대화에 충족할만한 대답을 건네주었다. 하지만 그와 소년이 생각할 교우의 위치는 어떠한가. 과연 원하는 대답을 얻었음에도 결코 기뻐하지 못하고서 애매히 웃음을 짓고있던 소년은 이윽고 무언가를 깨달은 듯 도리어 경직된 시선으로 그를 마주하였다. 고개를 돌리어 회피하는 그를 붙잡아 세운 채 손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위안, 혹은 기대어도 될 것을 강조하였으나 일말 표정에 변화조차 없던 이는 맹랑한 듯 소년의 행동을 응시하는 채 곧장 실소하였으니, 그것은 어딘가 지나치게 차분하여 도리어 소름이 돋을 정도의 매서운 안색이었다.

 

 

 

 

― 그렇다고 달라지는 게 뭐가 있는데?

― …네?

 

다자이 오사무는 침묵하였다. 소년이 당황하여 누차 행동을 번복하는 채 버벅거리자 그 광경을 한동안 지켜보던 행색으로는 이내 고개를 돌려 마주하고 싶지 않다는 듯 재차 궂은 자신의 발 밑 너머로만 시선을 고정하였다. 시간은 누차 지나쳐 어느새 대화가 종결된 지 어렴풋한 시간이 흘렀으나 여전히 당황한 기색의 소년이란 어찌 할 줄을 모르고 당혹스러워하다 이내는 객기를 부리려 결심한 것으로, 이내 소년은 그의 옆면을 향하여 글자 하나가 뭉개지는 것이 없이 묻고자 하였던 것을 질의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가령 소년 자신이 홀로 편벽이 된 관계에 집착하여 어긋된다고 하여도 전혀 두려울 것이 없다는 기색의 언사였으나, 그것을 마주하는 그의 입장으로서는 과연 자극이 되지 않고서야 그저 지나칠 수는 없는 별격의 발언이었다. 죽는 것에만 집착한다고 무엇을 바꿀 수 있겠는가. 이를 듣는 순간 그는 좀체 화난 기색조차 죽이고서 황폐한 시선으로 소년을 바라보는 것으로, 그 일말 소년은 원인을 모를 전율로 인해 낮게 몸을 떨었다.

 

 

너는 살아있어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잖아. 발 근리에 근접한 돌멩이를 하염없이 채기만을 반복하던 그는 대화에 가치를 느끼지 못한 듯 주저앉던 자리에서 일어서 흘깃 소년을 지나쳤다. 그러나 마치 그 광경이란 소년이 그를 놓친다면 더 이상 마주하지 못할 것만 같이 작위적이었기에 소년은 필사적으로 이를 잡으려 애썼으나, 어렴풋할 그의 뒷모습은 결코 잡히지 않는 채 이내 손아귀로부터 벗어났다. 불현듯 놓친 그의 행적을 미몽인 듯 한참을 바라보던 소년은 결국 자신이 예측하던 그의 행적에도 다음 날 굳이 발걸음을 향하여 옥상을 이르렀으며 이 후 마치 시초부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었다는 듯 그는 고요히 난간을 발판삼아 오른 채 주저앉아 있었다. 그 모습에 또한 당황하여 즉각 달려든 소년이 그의 손목을 잡아채려 하자 이조차도 예상한 것인지 직후 고개를 돌리던 그는 이내 온전한 바닥을 향하여 몸을 돌린 채 이윽고 주저앉았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마지막, 이를테면 영 개의치 않은 기색이었으나 지칠대로 지쳐 삽시 무너질 듯한 광경을 하고 있었기에 마치 붙잡지라도 않는다면 돌연 사라질 것만 같아 소년은 기어코 방심한 이를 붙잡고서 결코 놓지 않았다. 그것이 과연 소년이 그를 놓치기 사흘 전, 유난히도 그의 여부가 당연스럽게만 느껴지던 괴리한 나날 중 단지 하루에 불과할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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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괜찮은거예요? 

― 아. …아아, 응.





금요일의 오후. 노곤거리는 햇살 아래 용케 잠이 들기 직전의 눈살을 떨며 겨우 가까스로 대화하던 그의 대답에 소년은 이내 천진한 웃음을 지었다. 용케 수업조차 제치고서 발각되지 않기 위해 내부로부터 출입문을 걸어잠그는 나름 용의주도한 행각을 벌이던 그들은 장차 이른 아침부터 줄곧 옥상을 벗어나지 않고 있었다. 한참 졸음을 견디지 못하고서 잠에 든 그를 바라보며 소년은 느긋이 기지개를 켜고 있을 즈음 어느덧 마지막 교시마저 종결된 것인지 공을 차며 놀던 운동장 너머의 학생들이 재차 부산스러운 종소리와 함께 흩어지자, 소년은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그를 재촉하는 이내 자신마저 바닥을 딛고 일어섰다. 소년에게 지탱되어 돌연 정신을 차린 이는 점차 노을이 지기 시작하는 하늘에 직시하여 눈살을 찌푸렸으며 이윽고 동행하여 나갈 것을 재촉하는 소년을 바라보다 문득 제 시계의 너머로 시선을 옮긴 채 도리어 움직이지 않았다. 벌써 이런 시간인가. 잠시 방황하는 듯 독백하던 그가 재차 고개를 들며 소년의 손길을 넌지시 거부하는 채 소년에게로 홀로 돌아갈 것을 요구하자 소년은 일말 허공으로 맴돌던 손을 장차 자신의 뒷 편으로 숨기는 것으로, 볼일이 남아 당일이란 늦은 시각까지 남아있을 예정이라 대꾸하는 그를 향해 이내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어느새 난간에 기대어 주저앉아 있던 이는 외부로 하여금 걸음하고 있는 소년을 향해 미소짓는 채 시초 고맙다는 언사를 건네였으며 차츰 벗어날 듯 하던 소년은 과연 감격한 기색을 하여 이내 걸음을 반환하였으니, 소년은 그로써 그간 느끼지 못하던 삶에 대한 보람을 일부 감각하는 것만 같았다. 단순히 형식적으로 건네었을 인사에도 불구하고 몹시 들뜬 감정이 드는 것은 고작 세 계절을 지나친 사소한 인연의 인물이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것에 경이로움을 느꼈던 것이었으며, 그간 자신이 타인에게서 받았던 핍박은 물론 그가 느끼고 있을 일생에 대한 공백감과 실연마저 자신이 구원한 것 같은 느낌을 감각하고 있는 듯 하였다.





― 이제 갈게요. 월요일에 봐요.





소년은 이제 차츰 걸음을 떼어내며 난간에 마주한 그에게로 하여금 손을 내저였다. 제법 그의 뒷배경으로 진 석양이 아름답다. 슬며시 두 눈을 게슴츠레 가린 시선 사이로 스며드는 노을을 잠자코 감상하고 있던 소년은 이윽고 그를 재차 바라보며 점차 옥상으로부터 걸음을 멀리하였다. 한참을 걸음하여 짐을 챙긴 교실로부터는 도리어 낯설 정도의 인색한 기색이 느껴졌으며, 이조차도 웃음이 나와 걸핏 걸음하는 내내 홀로 웃음 짓던 이는 유난히 평소보다 가벼운 듯한 발걸음으로 차츰 운동장을 가로질렀다. 안녕, 잘 있어! 그러나 저 옥상의 너머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결국 사소한 웃음조차 숨기지 못하고서 등을 돌리던 아츠시였으나 도리어 자신을 따라 여럿 뒤를 돌아보는 학생들로 인하여 다급히 종적을 숨긴 것인지 이 후 결코 그의 행적을 발견할 수는 없었으니, 석연 아쉬움이 드는 감정에도 연거푸 폭소하는 채 이내 내키지 않을 걸음을 촉구하였다. 학교란 이리도 즐거운 곳이었던가. 마지막 주말 밤 소년은 그와 나눌 대화를 기약하며 홀로 잔뜩 망상하는 채 이래 잠에 빠져 들었으니, 그 당일날은 신기할만큼 도저히 배고픔 따위란 느끼지 않았다.









 기상청에서도 예보하지 않았던 가랑비가 내렸다. 이른 아침부터 얇게 머리맡을 두드리는 빗줄기에 줄곧 불쾌해진 소년이란 겨우 몸을 굼실대어 무척이나 굼뜬 움직임으로 교복을 갈아입었다. 비가 내리는 날은 결코 좋아하지 않는다. 소년에게는 빗소리를 분위기 삼아 감상하려는 감성조차 존재하지 않았으며 간혹 어깨를 두드리고 지나치는 그 스산참조차 소년은 그저 불쾌히 여길 뿐이었다. 무엇보다 그를 마주하지 못한다. 비가 내리던 나날마다 계단에 주저앉아 봉쇄된 옥상문을 쥐어 홀로 여럿 방비한 적이 있는 소년에게는 무엇보다 회상하고 싶지 않은 광경이었다.




 소년은 마치 달팽이라도 된 듯 느리게 걸음을 옮겼다. 아니, 비가 내리는 날의 달팽이란 실정 소년보다 더욱 빠를지도. 연거푸 한숨을 내쉬며 자신과 여럿 같은 복장을 하고서 걸음하는 이들을 슬쩍 지나치던 소년은 어느새 학교의 정문 근린으로 임박하였다. 그렇다면 혹여 그의 교실을 가보는 건 어떨까. 그러나 신중한 교우조차 없이 늘 방황하던 자신과는 다르게 늘 지나칠 적 어렴풋 바라보았던 교실의 내부조차 다른 교우들과 불편없이 원활히 교류하던 그를, 소년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애초 학년조차 다른 사이인데 괜히 배회해봤자 수치심만 얻어갈테지. 도저히 자신이 걸음하고 있는 너머의 시야는 살피지도 않은 채 한숨만 푹 내쉬던 소년은 결국 자신보다 앞서 걷고 있던 이의 뒷발에 채여 젖은 밑바닥을 향하여 주저앉았다. 이윽고 우스꽝스러운 소리를 내며 덜컥 자신을 따라 제자리에 우뚝 선 이를 올려보던 소년은 어째서인지 조금 겁을 먹은 듯한 기색으로 차츰 자신을 마주보는 한 여학생을 발견하였다. 그럼에도 소년이란 연신 사과를 건네고서 제 주변으로 널부러진 우산을 주워 다시 두 발로 자리에서 일어섰으나, 이윽고는 앞선 학생들이 좀체 학교의 내부로 걸음하지 못하고서 쭈뼛 망설이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빗길이라 통제라도 하는 것인가, 실정 입학한 이래 단 한 번도 그런 경우는 없었거늘. 무질서한 광경에 배색이 되는 것보다는 빗물이 더욱 꺼림칙하다. 소년은 이내 한 되 뭉쳐 흩어지지 않을 기색의 인파를 파헤쳐 이내 가장 학교에 근접할 자리까지 홀로 뛰쳐나와 그들이 궁색하던 정황을 지켜보고자 하였으나, 도리어는 놀라 바닥으로 재차 주저앉으며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도저히 평소와는 같은 기류라 단언할 수 없는 공백감과 더불어 정연하게 자리하고 있는 낯선 이들을 마주하기에 이르렀다.





 ‘여전히 자신은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해요?’

 ‘응. 나는 너처럼 정의로운 사람이 아니야.’





 결국은 아침부터 줄곧 생각하던 상념과는 달리 그의 반으로 향하여 책상 위로 놓인 국화꽃을 발견하고나서야, 소년은 당일에 있었던 사건으로 하여금 뒤늦게 그의 죽음을 실감하고야 말았다. 실상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소년은 배고픔마저 잊고서 줄곧 교실 내부에 자리하여 하염없이 창 밖만을 바라보았으며, 여전히 전교를 지나치다보면 어렴풋 그를 마주할 것만 같은 환상에 취하여 여러 번 접근을 금지한 그의 마지막 흔전 근린에서 한참 비를 맞이하는 채 미동하지 않았다. 도리어 이것은 꿈이 아닐까. 넋을 놓던 와중 몇 번 고개를 젓거나 뺨을 쥐었으나 통증이란 변함없이 생생하게만 느껴졌다. 언제부터 그가 자신의 일과에 이렇게 면밀이 들어왔던 것인지. 취침 직전 맨바닥에 누워 잠을 지내려 바등이던 소년의 눈가로 이내 원인을 알 수 없는 눈물이 차츰 흐르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보도에서는 그를 단순한 수험생의 스트레스를 원인으로 단정하였으며 그의 영향으로 학교에서는 자유롭게 개방하고자 하였던 옥상을 단속하며 난간의 철조망을 더욱 강화시켰다. 이 광경을 만약 그가 마주하였다면 소년은 그에게 그의 죽음이란 감히 가치가 있었다는 것을 말해줄 수 있었을까. 방과 후 그의 교실에 홀로 놓인 국화꽃을 바라보며, 소년은 또한 잠시 생각하였다. 


  그의 죽음 또한 슬퍼하는 이가 홀로라도 있었다는 것을. 물론 눈물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네… 자살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