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상 같은 내용의 편지를 적어 보낸다. 나는 나름대로의 삶을 지내고 있다. 쥬시마츠는 공장으로 일을 나가 저녁이 되면 돌아오고, 쵸로마츠는 주말에는 콘서트를 보기 위해 바깥으로 향하며 평일에는 아버지의 회사로 들어가 일을 하고 있다. 오소마츠는 최근 부쩍 우울해진 모습이다. 특히 평일이 되면 홀로 추욱 처져 누군가 말을 걸어도 아는 체를 않았다. 가족 모두가 모이는 주말에는 애써 괜찮은 척 태평하게 행동하고 있었으나 그것이 오소마츠의 진심이 아니라는 것은 사실 그 모두가 알고 있다. 토도마츠는 평일, 밤이 되어서야 돌아오는 쵸로마츠를 대신하여 이제는 밤마다 화장실을 가기 위해 나, 혹은 오소마츠를 깨워 화장실로 이끌었다. 오소마츠는 초반 아무 말 없이 따르는 듯 했지만 어느 날부터는 새벽에 그 누가 어느 소란을 피워도 미동도 하지 않았으며 결국은 내가 그와 함께 화장실을 가주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네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나, 벌써 네가 집을 뛰쳐나간 지는 어느덧 넉 달이 훌쩍 지나가고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편지는 계속해서 반송되겠지. 하지만 나는 아직도 뛰쳐나가기 전 네가 했던 말을 기억한다. 너는 나에게, 그리고 가족들에게 이렇게 소리쳤다. 그 누구라도 당장 달라지지 않으면 안된다고. 처음에는 머리가 나빠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위해 하남을 생각했으나 결국 너의 잠정적인 결론은 그것이었다. 너는 내가 싫었다. 그리고 우리들이 싫었다. 그것은 네가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 직전 처음으로 형제들과 싸우던 모습이 그 근거가 될 수 있었다. 나는 차마 듣지도, 그리고 보지도 못한 척 하였지만 사실 전부 알고있었다. 우리들은 형제니까. 너와 나는 생각하는 것이 같을테니까. 이제 형제들은 지난 날을 두려워하며 너를 그리워하고 있다. 나 또한. …나 또한 같은 생각일까?
너는 누구보다도 독실하였고 정이 많았다. 그런 네가 우리들을 두고서 나간다는 것은 감히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내 편지의 의도는 그러하다. 네가 나간 이유를 알고싶다. 네가 무엇을 판단하고 무엇을 실수하여 가족 모두가 등을 돌린다고 해도 당장 네가 실행한 행위는 잘못된 것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언젠가 너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였지. 실수는 용서받을 수 있을 때 사과해야 한다고. 나도 너에게 일침한다. 지금 당장 이 편지를 본다면 돌아오기를 바란다. 하지만 너는 끝내 닿지 못하고서 이 편지처럼 한 자리를 계속해서 맴돌테지.
긴 글을 읽지 못하는 너를 책망하기 위하여 편지의 전문을 요약한다. 돌아와라. 아직 가족 중 그 누구도 너를 보낸다는 것을 결정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아직 네게 할 얘기가 남았고, 너도 그렇다는 걸 알고 있다. 길이 막혀 있다면 그것을 지나치는 것이 나의 목적이다. 돌아와주길 바라. 내가 꾸준히 편지의 내용을 고치지 않고서 전문 그대로를 보내는 이유는 네가 돌아오는 길을 헷갈리지 않길 바라는 배려이다. 언제나 같은 곳에서 널 기다리고 있을게. 집으로 돌아와 변명이라도 해주길 바라며. 이 편지는 현재 72 번째를 반복하여 반송 되었다.
- 松野一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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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전 보내었던 편지가 반송되지 않았다. 넉 달을 보내고 되돌려 받기를 반복하였지만 이러한 경우는 시초였기에 줄곧 며칠을 기다렸지만 결국은 아무런 소식이 없었으며, 그 얼마 후에는 편지가 전달 되었다는 황당한 메시지와 함께 결국 편지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본인이 편지의 겉면에 펜으로 눌러 적은 것은 오직 이름뿐이 없었거니와 우표 또한 붙인 적이 없었기에 발송되는 것이 더욱 괴상한 경우였다. 이치마츠는 일단 이것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사실은 말하고자 하여도 그들에게 원하는대로 전달될 수 있을 지 의문이었으며 누구라도 일단 그의 이름을 듣는다면 발끈하여 덤벼들테니 감히 용기내어 말할 수조차 없었다.
시간은 넉달 전으로 돌아간다. 이치마츠는 유일한 방관자였다. 예보에는 없었던 소나기가 내리는 탓에 길고양이들에게 사료를 나눠주던 이치마츠는 귀가 시간 보다 조금 더 이른 시각에 집으로 들어섰다. 집 안은 평소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로 어수선했다. 누군가의 윽박이 창문 너머로 들렸으며 또 무엇인가 쿠당 넘어지는 소음이 들리기도 하였다. 이윽고 집으로 들어선 이치마츠는 자신의 눈 앞의 광경을 의심하였다. 카라마츠는 토도마츠의 멱살을 잡고서 금방이라도 주먹을 내리칠 듯 한껏 성을 내고 있었고, 토도마츠는 옷가지가 늘어진 채로 잔뜩 울음을 참고 있었다. 눈물을 글썽이고 있는 것이 다툼이라도 한 것일까 했지만 수상하게도 다른 형제들은 싸움을 만류하지 않았으며 미처 이치마츠가 돌아올 줄 몰랐다는 듯 놀란 눈으로 이치마츠를 향했다. 다들 뭘 해? 당황한 나머지 이치마츠가 낮게 중얼거리자 곧 넋이 나갔던 카라마츠는 황급히 손을 놓았고, 혀를 한 번 찬 채로 자리를 벗어났다. 모두들 그가 다시 돌아올 줄 알았기에 방관하였지만 과연 그것은 우리가 마주한 카라마츠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메시지는 돌고 돌았다. 돌고 돌며 또 돌기를 반복하였으며 하루마다 한 번씩 같은 내용으로 도착하여 이치마츠를 몹시 심란하게 만들었다. 어느 날에는 견디다 못해 성이 나 돌연 전화기를 들고 발신인을 조회하였으나 놀랍게도 조회되는 것은 불명이었으며, 이를 조회해주던 남성마저도 의문을 가지고서 애초 문자의 형식이 아니지 않냐는 의구심 가득한 이야기를 건네었다. 점차 원인 모를 두려움에 어느 경우에는 번호를 바꾸어야 할까 망설였지만 결과적으로는 바꾸지 못하였다. 메시지로 인한 괜한 기대감은 이치마츠를 들뜨게 만들어, 이 후로도 여러 번 발신 되는 문자를 보며 이치마츠는 기대를 품었다. 카라마츠는 역시 가족을 방치할 리가 없다고.
「편지 쓰는 건 그만뒀어? 왜 이제는 안 해?」
「…. 으음.」
「…그래, 잘 생각했어. 끈기 없는 데 있는 티 내면 못 써.」
사실은 답장을 기다리고 있어. 라고 대답한다면 당장 오소마츠는 어떠한 반응을 보일까, 머릿속으로 잠시 상상한다. 곧 고개를 주억거리자 우습다는 듯 키식거리던 오소마츠는 결국 불쾌한지 거실 밖으로 자리를 피하였다. 여전히 카라마츠가 어색하고 불편하다는 기색이 막연하여 보였다. 이치마츠는 아예 바깥으로 나서는 오소마츠를 바라보다 등을 돌린 채로 머리맡에 놓인 휴대전화를 발견하였고, 여전히 같은 내용으로 몇 시간 전 도착해 있는 메시지를 살피고서 잠시 상념에 잠겼다. 과연 네가 그 때 저지른 일들은 모두 용서 받지 못할 일이었을지. 회상에 젖어 잠시 과거를 감상하는 채로 눈을 감았다. 너는 분명 아직 어딘가에 남아있었다.
서술하자면, 카라마츠는 책임감이 강했고 그 누구보다 배려심도 깊었다. 유순하고 싸움을 싫어하여 항상 먼저 고개를 숙였었던 카라마츠도, 형제가 괴롭힘 당하는 것을 보고서 화가 나 학교에서 가장 난폭했던 아이와 싸워 이겼다는 일화는 그들과 같은 중학교를 나왔다면 아마 모를 이가 없을 정도로 꽤나 유명한 일화였다. 그런 그가 대뜸 형제들에게 주먹을 휘두르며 난폭하게 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있다고 하여도 그 사실을 전달받은 사람 열 명중 일곱은 의문을 가질 것이고, 셋은 한참을 망설이고 고민하다 결국 막연히 묵인하였을 것이다. 그랬기에 이치마츠는 자신이 집 안에서 목격했던 사실에 의구심을 가졌다. 열을 거두라 하면 백을 도왔을 상냥한 카라마츠를 견디지 못하게 하였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하지만 해답은 그다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편지가 어디로 갔는지 알고 싶은데요.”
한참을 머뭇거리며 말하기를 주저하던 이치마츠가 끝내 중얼이자 그를 뒤로 미뤄두고 제 업무를 보고있던 여직원은 그제서야 사무적인 미소를 지으며 용무를 물었다. 이제는 간단한 대화조차 버거워진 이치마츠는 결국 구비되어 있던 펜과 종이를 들어이름과 집주소를 상세히 적었고, 슬며시 건네며 조회해줄 것을 요구하자 어느새 분주하게 손을 움직이던 여직원은 돌연 표정을 굳혔다. 이거 반송된지 좀 됐는데요? 모니터를 직접 눈 앞으로 들이밀던 그녀는 여지껏 반송을 하며 축적되어온 불만을 슬며시 털어놓고 있었다. 그와 별개로 이치마츠는 몹시 당황하여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우체국을 빠져나와 정처없이 걷기 시작하였는데, 마음 속은 심란하고 머릿속은 한참 복잡하여 결국은 얼마 못가 길거리에 주저앉고야 말았다. 실속없는 자신의 행동에 웃음이 나왔고 과연 그 앞은 막막하였다. 한참 전 돌아갔다는 편지의 행방이 묘연하니 무얼 해야할지 생각하던 이치마츠는 끝내 자신이 있던 원래 자리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하늘은 흑요석처럼 컴컴하니 과연 돌아갈 곳이 있겠냐만은, 일단 무작정 걸음을 옮긴 이치마츠는 저녁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정작 자신은 해가 지는 동안 무얼 했는지도 기억하지 못한 채로.
*
가족들과 이야기를 단절한지도 어느새 한 달이 훌쩍 지나가고 있었다. 이치마츠는 차라리 이대로 카라마츠가 돌아오지 않았으면 하였다. 모습은 꾀죄죄하여 벌써 한 달 사이에 먹질 않아 뼈대가 살짝 드러날 정도로 몸은 야위었으며 방 한 켠에는 글자가 빼곡히 적혀 있는 종이 조각들로 가득하여 그 누구도 치울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카라마츠로부터는 꾸준히 연락이 유입되고 있었다. 늘 일정한 시간에 도착하는 기계적인 내용의 메시지였지만 단 하루라도 도착하지 않는다면 이치마츠는 지나치게 불안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이미 형제들은 진작 이치마츠를 상대하는 것을 그만 둔듯 하였지만 넌지시 속으로는 내심 걱정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 중 쵸로마츠는 결국 숨이 막힐 듯 답답한 기류를 이기지 못하고서 자립을 택하여 얼마 전부터는 더이상 가족들과 함께 살지 않게 되었다.
“이치마츠.”
급기야 벽에 등을 기대고서 앉아있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몸을 비척거리는 이치마츠를 보며 용케 오소마츠는 입을 열었다. 이치마츠는 눈을 감고서 작게 알아 들을 수 없는 말들을 흥얼거리던 것을 멈추었고, 곧 조용히 뒤를 돌았다. 그 모습이 과연 섬뜩하여 자신이 알던 그가 맞을까, 하였지만 오소마츠는 곧이어 편지를 쓰는 것을 그만 두는 게 어떻겠냐는 물음을 하며 불안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비딱하니 내밀고서 감감히 생각하는 듯 하던 이치마츠는 곧 인상을 굳히고서 중얼거렸다. 시초 카라마츠를 추궁하는 일만 없었더라면 모든 것은 제자리였을 것이다. 홀로 이렇게 말하고서는 다시 등을 돌려 몸을 불안정하게 떨기 시작한 이치마츠는 기척이 느껴질 때마다 뒤를 돌아 죽일 듯이 오소마츠를 노려보았다. 한숨을 내쉬며 막막해하던 오소마츠는 결국 등을 돌려 한 사람 외에는 인적 없는 작은 방을 나섰다. 방 밖으로는 잔뜩 걱정하는 기색으로 안절부절 못하는 형제들이 있었으며, 오소마츠는 그들의 팔을 두어 번 쓸어준 채 돌아가자고 그들을 다독였다. 겁을 먹은 쥬시마츠와 토도마츠는 별 다른 말들은 하지 않고서 그저 오소마츠가 이끄는대로 이끌렸지만 그들 각자는 홀연히 사라진 카라마츠와 이치마츠가 던지는 책망감을 느끼고 있어야만 하였다.
아직은 어린 아이같은 그들을 겨우 달래어 재우고나서 마당 밖으로 나온 오소마츠는, 꽤나 오랜만에 보는 듯한 쵸로마츠를 마주하였다. 어쩐지 조금 마른듯 한 쵸로마츠는 오소마츠를 발견하고서 애써 말끔한 웃음을 지었고 곧 그에게 다가와 낯선 편지 한 장을 건네었다. 사실 낯설다고 하기에는 어쩐지 익숙한 편지지로서 오소마츠는 어째서 그것을 가지고 있냐는 의구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고, 쵸로마츠는 넌지시 다가와 속삭였다. 카라마츠에게로 연락이 닿았어. 그의 말에 지친 듯 반쯤 눈이 풀린 오소마츠가 삽시 고개를 들었지만 쵸로마츠는 여전히 긴장하고 있는 채로 고개를 저으며 더 바짝 귓가로 입술을 붙이고서 그 아무도 들리지 않도록 낮게 속삭였다. ―, 하니까. 여전히 쵸로마츠에게 공감하지 못하겠다는 듯 얼굴을 굳히고 있던 오소마츠는 그제서야 동조한다는 듯 서서히 그에게서 멀어졌으며, 곧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쵸로마츠를 벗어나 집 밖으로 향했다. 쵸로마츠는 그에게 미처 건네지 못한 편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치마츠가 속한 2층 방을 응시하며 편지를 제 가방 안으로 깊숙히 집어넣었다. 아직은 역시 시기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