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이란 모든 것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었다. 이를테면 여름마다 듣기 지겨운 매미의 울음소리와 도로를 오고가는 자동차의 소음, 아이들이 축구공을 차며 뛰놀거나 주변 상가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마저도 유익하게만 느껴지는 것이었다. 소년이 옥상을 알게 된 계기는 조금 특별하였는데, 반 년 전 홀로 옥상에 서서 자살 소동을 벌이던 남학생을 시초로 굳게 닫힌 옥상은 더 이상 만인의 공간이 아니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꼼수에 능했던 소년에게는 단순한 옥상 걸쇠는 딱히 어려운 경우도 아니었기에, 소년은 모두가 발길을 끊은 그 이후부터 줄곧 옥상으로 향하였다. 학교에서도 괄시받는 존재였던 소년에게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었기에, 한 걸음만 내딛어도 미련마저 버릴 수 있는 이러한 공간이 소년에게는 몹시도 흡족해했다.
전 날 밤, 재차 옥상 걸쇠를 걸어야함을 잊고서 돌아갔던 소년의 발걸음은 틀림없이 평상보다 조금 더 빨랐다. 일부러 이른 시간에 기상하여 집을 나선 소년은 반에 들릴 생각도 않고 옥상으로 향하였으며, 역시나 열려있는 옥상 문을 발견하고서 머리를 벅벅, 긁는 채로 망설임 없이 옥상 문을 열었다. 아직 갈아 신지도 않은 신발을 질질 끌고서 옥상을 어슬렁거리던 소년은, 어쩐지 평상과는 다른 누군가의 기척을 느끼고서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착각인 것일까? 옥상 계단을 기준으로 그 주위를 배회하던 소년은 대략 중천으로 솟은 햇살에 길게 늘어진 그림자 하나를 발견하였다. 펜스에 걸터앉아 바깥을 향해 돌출한 그는 대번에 떨어질 것처럼 무척 아찔하였고, 잠자코 지켜보고자 하니 위험한 듯싶어 소년은 서서히 일어서는 그를 향해 금세 달려들어 바닥으로 주저앉혔다. 팡. 상당히 요란한 소리를 내며 주저앉은 그는 짧게 신음하였으며 곧장 소년과는 눈이 마주쳤다. 어라, 이 사람은…. 놀란 카라마츠가 고개를 들어 응시하자 불쾌하다는 듯 엉덩이를 털며 일어선 그가 욕설을 낮게 늘어놓았다. 악의는 없는 듯 했다.
“배려와 무례는 한 끗 차이라더니….”
“….”
“뭐해. 비켜.”
처음 보는 인상이라고 한다면 사실 거짓이었다. 그는 교내에서 나름 유명한 학생으로서, 궁도부에 속하여 대회를 나갈 적마다 상위권으로 입상하여 선생들로부터 신임을 받거나 학생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그러나 만사에 무감하고 타인과 교감하는 것이 적어 그가 적의를 풀고 살갑게 대화하는 것을 본 적마저 드물었으며 감정 기복이 유독 심해 타인과의 대화로 기분이 조금이라도 언짢아지는 경우에는 덜컥 가방을 들고서 집으로 돌아가고는 했다. 심지어는 성적마저 중상위권을 웃돌았으며, 대회마다 유능한 스카우터가 그를 주목하고 있다는 평마저 돌아 아쉬울 것 하나 없다고 생각 하였으나 이번 일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경우였다. 과연? 자살이라고 단정 짓는 것은 물론 섣부른 행동이었으나 펜스에 아찔하게 매달려 있는 그를 구한 소년 자신의 행동에 잘못된 것은 일말 없었다. 나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던 그가 이런 식으로 무례한 것 또한 상상한 적 없는 일이었다.
수 가지의 상념이 머릿속을 오고 간 결과 카라마츠는 결국 이치마츠를 지나치기로 결정하였다. 바닥을 딛고서 조심스레 일어나 한두 걸음 물러선 채로 그를 향해 작게 목례를 한 카라마츠가 그의 곁을 지나쳤으나, 모호한 표정으로 그를 마주하던 이치마츠는 느닷없이 분노로 낮게 몸을 떨며 기가 막힌 듯 헛웃음을 지었다. 순간 기척을 눈치 챈 카라마츠가 등을 돌리자 비딱하게 팔짱을 낀 채로 응시하던 이치마츠는 전보다 얼굴이 험악해진 채로 카라마츠를 마주하고 있었다. 무엇을 잘못 한 것인지 생각하였지만 자신에게 잘못한 것이라고는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으며, 되려 구해준 것에 감사해야하지 않느냐는 생각마저 문득 들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과연 소년은 불쾌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으며 맞물려 있던 입술은 금방 무언가라도 뱉어낼 듯 작게 달싹이고 있었다.
“착각이 지나쳐도 유분수지.”
“…아?”
“병원이나 좀 가. 재수 없게 내 일상에 엮이지 말고.”
과연 그가 말하는 일상은 떨어질지 모르는 펜스에 매달리는 것인가. 본인의 할 말을 마쳤다 싶은 이치마츠는 꽤나 흡족한 듯한 얼굴로 카라마츠보다 앞서 옥상을 나섰고, 카라마츠는 그저 어벙한 표정을 짓고 있는 채로 우두커니 서있었다. 그 때 바닥 위로 낭랑하게 빛나는 작은 유리조각이 문득 고개를 내린 카라마츠의 시선 이내로 들어왔다. 바닥과 마찰할 적 쓸리기라도 했는지 어느새 팔등에도 선명한 절창에 놀란 카라마츠는 재빨리 자신의 팔을 감쌌다. 과연 방금 하였던 모든 말들은 카라마츠의 팔을 염려에 두고 한 이야기인가? 당황한 카라마츠는 팔등을 쥔 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미세한 핏줄기를 보며 서둘러 옥상을 나섰다. 그 와중에도 이번에는 옥상을 닫는 것을 결코 잊지 않았다.
*
「전국 궁도 대회에서 동상을 수상한 마츠노 이치마츠…,」
또 이치마츠. 잠잠하다 싶은 찰나 아침 방송에서부터 귀에 진물이 나도록 들은 그의 이름에 한숨을 내쉰 카라마츠는 다시 턱을 괸 채로 창가 너머를 바라보았다. 마주치지 않은 지는 어느덧 2주가 훌쩍 지나가고 있었지만 이치마츠는 전교 그 어느 곳에서나 보란 듯이 존재했다. 당장 학급의 여학생들마저도 가끔 이치마츠가 복도를 지나갈 적 좋다고 소리를 지르는 모양새니, 귓가에 가라앉은 딱지가 가시려면 아직 한참이나 남은 듯 했다. 그래도 모자랄 것 하나 없는 이치마츠와 자신은 다른 공간에서 공존하는 듯 했기에 더 이상 접촉할 리 없다고 판단한 카라마츠는, 안심한 채로 그 날 역시 옥상으로 향했다. 아침 방송이 종료되고서 화장실을 핑계로 조회를 벗어난 직후였다.
조심스레 옥상 문을 열고 들어가 소음이 생기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스럽게 닫은 카라마츠는, 운동장이 가장 잘 보이는 쪽으로 향해 걸어가 주저앉았다. 저만치에서부터 불어오는 바람을 만끽하며 조용히 두 눈을 감고 있던 도중 어째서인지 또 다른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졌다. 가만히 감던 눈을 뜨고서 발걸음을 죽인 채 조심히 주위를 살피던 찰나, 저 한 구석에서 무릎을 모은 채 얼굴을 묻은 누군가가 보였다. 이치마츠. 딱히 분간하려 애쓰지 않아도 언뜻 알 수 있었다. 어째서 그가 이곳에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어느새 그에게로 한달음에 다가간 카라마츠는 그의 앞에 우두커니 섰다. 기척을 느낀 이치마츠는 무릎 사이로 깊게 묻었던 고개를 점차 들었으며, 어째서인지 그는 조금 젖은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여기서 뭐하는,”
“……오늘은 인정할게. 내가 네 구역에 침범했어.”
무릎을 다시 끌어안는 채로 고개를 묻은 이치마츠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의 옆 편으로는 직전 받은 듯한 상장과 패가 놓여있었으며 이치마츠의 가슴께로는 붉은 색의 조화가 달려 있었다. 어느 사이에 올라왔느냐고 묻기에는 그의 얼굴은 침울했으며, 금방이라도 쏟아질 소나기마냥 젖어 있었다. 방치하는 편이 더 나았다. 한참을 그의 뒤통수만 바라보다 결국 오늘은 돌아가기로 결정한 카라마츠는 대충 그에게 보이지 않도록 고갯짓을 한 채로 등을 돌렸다. 조용히 옥상 문을 닫은 카라마츠는 아직 조회를 하고 있는 학급 안으로 들어섰다. 여전히 반 안은 입상을 한 이치마츠의 이야기로 떠들썩하였다.
이치마츠는 그 다음 날에도 옥상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수업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한 모습으로, 카라마츠가 들어서 잔뜩 눈살을 찌푸리고 있을 즈음에는 연신 미안하다는 대꾸만 할 뿐 사실상 신경 쓰지도 않는 듯한 모양새였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카라마츠의 호기심을 자극시키는 행위로, 이번에는 카라마츠가 그의 곁으로 성큼 다가가 주저앉고서 고개를 들 때까지 벗어나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기척에 고개를 든 이치마츠는 바로 옆 편에서 하늘을 우러러 보고 있는 카라마츠를 보고 깜짝 놀란 듯 했고, 카라마츠는 그 사이 객기라도 생긴 모양인지 고개를 든 이치마츠를 향해 아는 체를 하였다.
“오늘은 무슨 일?”
“…잘난 날씨 구경하는 일.”
“어제 그 논리대로라면, 방금 얘기는 좀 이기적인 발언인데.”
그럴지도. 우습다는 듯 헛웃음을 내뱉으며 잠자코 눈을 감은 이치마츠가 늘어지듯 무릎을 감싼 팔을 풀며 바닥을 짚었다. 몇 주 전 만난 이치마츠와는 많이 변한 듯한 이미지였으며, 그는 대화가 끊긴 와중에도 이따금 한숨을 내쉬며 홀로 괴로워하였다.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개인 하늘을 보며 카라마츠는 새삼 감탄하고 있었지만 이것은 일부러 그의 이목을 끌기 위한 행위였으며 사실은 간간마다 눈을 굴려 이치마츠가 무얼 하고 있는지 은근히 주목하고 있었다. 그러나 애초에 시선을 눈치 채기라도 한 듯 조소를 띄운 이치마츠는 그를 향해 낮게 속삭였다. 가장 이기적인 죽음을 아느냐는 의미 불명의 질문이었다.
대체로 너무 많은 것을 궁금해 하지 않으면, 모든 관계는 아주 원만하게 흘러간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를 위해 이기적인 죽음에 관해 잠시 생각했지만, 결코 떠오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이치마츠를 특이한 사람이라 생각하였다. 생뚱맞은 질문을 하고서도 꽤나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를 보아 나름의 대답을 생각하였지만 떠오르는 것은 그 아무것도 없었다. 소년은 조금 더 머리를 굴렸다. 이기적인 죽음이라 하면, 과연 자살일까? 그것이 아니라면 살인일지도. 이치마츠를 배려한 카라마츠 나름대로의 대답은 그러했다. 이치마츠는 눈썹을 실룩였다.
“답은 투신자살. 미련한 어벙아.”
“…굳이?”
“……. 투신을 하면 누가 시신을 수습하겠어. 타인의 몫이지.”
그런가. 고려하지 못한 사항이었기에 미처 깨닫지도 못하였다. 하지만 이치마츠는 어째서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 것인지, 문득 처음 만났던 날을 회상하니 갑자기 제 팔로 소름이 돋아 덜컥 이치마츠를 붙잡으며 알 수 없는 윽박을 질렀다. 몹시 당황한 이치마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무슨 의미냐고 물었지만 곧 자신도 알아차린 듯 했으며, 덜컥 자신을 붙잡은 카라마츠의 손을 풀고서는 실소를 터뜨렸다. 언뜻 보아서는 우는 것 같기도 하였지만 미친 듯이 웃음만을 터뜨리는 그를 향해 의미를 묻기에는 너무 늦은 것만 같았다. 한참을 웃던 소년은 곧 웃음을 그치고서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볼게. 그가 고하는 생뚱한 작별 인사였다. 다급해진 카라마츠는 그를 불러 세웠지만 이치마츠는 아랑곳 않고 옥상을 빠져나갔으며, 그 뒤로 좀체 모습을 비추지 않았다. 그 후로 다시 옥상으로 올라와 쓸쓸히 자리 잡고 있던 것은 2학기의 기말고사가 끝난 후, 76등에서 전교 14등이란 위치에 올라선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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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방학이 끝난 후의 여운이 가기도 전에, 중간고사는 대략 두 달을 남긴 채로 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그 무렵의 이치마츠는 성적보다는 궁도에 필사적으로, 최근에는 결국 전국 대회에서 입상하여 학교의 정문과 건물에 크게 그의 이름이 걸리기도 하였다. 이치마츠는 매사에 필사적이었지만 막상 무언가를 이룬 후에는 성취감 대신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듯 했다. 어차피 묻고자 하여도 홀로 독백을 하다던가, 불리할 적엔 줄곧 동문서답만 하고 있으니 그럴 겨를을 느끼지 못한 카라마츠는 결국 스스로 한 발을 물러섰다. 다른 사람보다 이치마츠와 자주 접촉한다고 하여도 결국 그와 특별한 관계를 나누는 것은 아니었음을 깨닫고 난 후였다.
언젠가 카라마츠는 팔목이 벌겋게 부은 채로 양호실로 들어 온 이치마츠를 본 적이 있었다. 그 날은 카라마츠가 보건부원으로 방과 후 보건 선생의 공백을 책임지던 중으로, 몇 주간은 활시위를 제대로 당기지 못할 정도로의 암담한 부상이었다. 그의 뒤를 따라 들어온 부원들은 매우 놀란 듯 했지만 이치마츠는 일말의 표정 변화도 없이 그저 자신의 부은 팔목을 쥔 채로 느긋이 고개를 끄덕였다. 카라마츠는 아무런 조치 없이 돌아가려는 이치마츠를 향해 몇 주간은 느긋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였으나, 잠자코 듣는 체를 하던 이치마츠는 결국 돌아간 뒤에도 연습에 매진하였다. 억지스럽게 은색 메달을 딴 뒤로 돌아온 마주한 그는 불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카라마츠의 얼굴을 정확히 마주하고서 단 한 번 조용히 속삭였다.
‘두 달로 늘어났어. 그건 조금 힘들지도.’
미련한 이치마츠. 카라마츠는 그의 팔목을 감싸고 있는 아둔한 붕대를 바라보며 잠자코 생각했다. 언젠가 단 한 번, 독백으로라도 속삭이고 싶었다. 도대체 이치마츠는 무엇에 그리 압박을 받느냐고. 그 말을 듣는다면 분명 코웃음을 치며 착각하지 말라고 답할 것이 명료하여 차마 묻지는 못하였지만 아무도 그를 압박하지 않는 공간 속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달음박질만 하는 소년을 주변에서 말리는 이는 결코 아무도 없었다. 혼자서 한없이 나아가려는 그를 보며 카라마츠는 애처롭게 여겼으나, 결국에는 그것뿐이었다.
대화 하는 것이 여전히 서툴러서일까, 그는 여름방학을 이후로 단 한 번도 대화하는 도중 감정을 표현하는 것마저 줄었으며, 대화는 곧 인사를 건넨 그 지점에서부터 정지했다. 그의 가까운 주변인 A는 이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학업에 매진하는 것이 다행이라며 펜을 쥐고서 묵묵히 고개를 숙인 이치마츠를 격려하였다. 이치마츠의 낯빛은 변함이 없었지만 카라마츠는 객기를 내어 어느 날 그와 단 둘이 있는 은밀한 공간에 있을 즈음, 슬며시 옥상 걸쇠의 열쇠를 건네었다. 오래 전 단순히 옷핀을 이용하여 옥상을 드나드는 카라마츠를 동정하여 이치마츠가 건넨 열쇠의 복사본이었다. 이치마츠는 살포시 웃음 지었다.
“무슨 의미? 열쇠라면 나도 있어.”
“…빌려줄게. 옥상.”
“뭐야. 언제는 당연하게 가도 아무 말 않더니.”
여러 가지의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는 카라마츠 나름대로의 욕심이었다. 자신만의 아늑한 공간이라고 생각한 만큼 이치마츠도 그리 느껴주기를 바랐다. 어찌 하였거나 옥상은 홀로 남아 있기에는 최적의 공간이었으며, 이치마츠마저 그곳에서 한 번쯤 털고 지나간다면 기분이 조금이나마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마저 슬며시 들기도 하였다. 나름의 설렘에 사로잡혀 건넨 열쇠를, 이치마츠는 그저 멀뚱히 바라보며 넌지시 거부하였다. 혼자서 드나들지는 않겠다고 말했었잖아. 그렇게 대답하는 이치마츠를 보며 당황함에 문득 떠오르는 회상은, 정말로 그러했다. 당황한 나머지 얼굴을 붉히며 황급히 열쇠를 숨긴 카라마츠는 헛기침을 두어 번 내뱉었다. 그동안 머릿속에 늘어놓았던 모든 상념들은 결국 조급함에 얽힌 것들이었을까. 무언가를 강하게 부정당한 느낌을 받으니 그 순간부터 혼란스러움을 감출 수 없던 카라마츠는 대충 상황을 얼버무리며 황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그 때마저도 손을 저으며 인사하는 이치마츠는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무감한 표정이었다. 그래도 고마워. 입모양으로 살랑 속삭이는 그 모습은, 유일하게 달라진 그의 일부였다.
*
시험을 치루고서 그 일주일간은 성적 발표로 인해 지옥이라, 지루한 등굣길마저도 머리를 싸매며 괴로워하는 학생들이 즐비하여 나름 볼만한 광경이었다. 늘 공부와는 담을 쌓았던 카라마츠는 담담한 기색으로 게시판 근처로 몰려든 인파를 해치고서 벽보 가까이로 다가섰고, 익숙하게 가장 아래에서부터 이치마츠의 이름을 살피며 서서히 눈동자를 굴렸다. 2등 마츠노 이치마츠. 상단에 나란히 적힌 세 명의 이름 중 가장 가운데에 속한 그의 이름을 카라마츠는 몹시 놀란 표정으로 마주하였다. 역시나 학생들의 입에서 오고 내리는 이는 역시나 이치마츠로, 빠르게 퍼지는 소문에 비해 동아리 활동과 병행하면서까지 성적 유지가 가능하냐는 상당히 무난한 내용이었다. 카라마츠는 서둘러 계단을 올라 이치마츠의 반으로 향했다. 그의 이름이 언급될 적마다 항상 딸려오는 것이 학번이었기에 그다지 찾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기에, 그의 학급 앞까지 한달음에 다가선 카라마츠는 두 눈을 굴리는 채로 이치마츠를 찾았다. 교실은 몇 학생을 제외하고는 말끔히 비어있었다.
소년은 곧장 옥상으로 향하였다. 마치 열려 있을 듯 했던 옥상은 굳게 잠겨 오직 침묵만이 존재하였으며, 처음부터 아무도 드나들지 않았었다는 것처럼 몹시 고요하였다. 카라마츠는 굳게 잠겨 꼼짝도 않는 걸쇠를 손아귀에 꼭 쥔 채로 조용히 두 눈을 감았다. 손바닥으로는 동록이 흠뻑 묻어나왔다. 옥상에도 없는 그는 어디로 향했을까.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마츠노 이치마츠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오늘과 내일, 그리고 그 다음 날마저도. 거개의 학생들이 종적을 감춘 그에게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유일하게 그의 담임만이 침묵하는 가운데, 이치마츠가 주말 중 은밀히 학교로 들어와 1학년 복도를 배회한 것을 목격했다는 야구부 B군의 목격담이 들리며 교내에서는 근거 없는 은밀한 소문이 점차 퍼지기 시작하였다.
카라마츠는 그 와중 끊임없이 옥상을 드나들었다. 일말 소문처럼 그가 혹시 옥상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몹쓸 희망을 가지고 있는 것 또한 부끄럽지만 사실이었다. 머리 위로 석양이 드리우고 날짜가 바뀌기를 서너 번 반복하며, 카라마츠는 결국 실망한 채로 제 교실에 들어와 잠시는 옥상으로 올라가지 않았다. 그동안 머릿속은 쓸데없는 상념으로 가득 찼다. 결국 여러 날을 거듭하여 생각한 결과 카라마츠는 홀로 낙담하여 그 날, 스스로 학교를 벗어났다. 언제나 이치마츠에게 비밀이란 무수했고, 결국 카라마츠를 의지한 적은 결코 단 한 번도 없다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얼마 전 잠을 설쳐 예민한 채로 학교로 향한 카라마츠는 제 책상 서랍으로 발견된 낯선 문학 노트를 쥐었다. 누군가의 노트일까, 생각하기도 전 카라마츠는 한 가지 다른 사실을 깨달았다. 이치마츠는 한참 전 이미 학교에서 벗어났음을. 문학은 그러한 의미의 과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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