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논님 커미션 카라이치













    작년의 연말 정산 중 판매율 부진이 증명되어 타 업체로 인해 일방적으로 부품 공급이 중단되는 탓에, 기껏 일을 벌려봐야 최대 공장장이 나섰던 업무에 총체적인 관리자가 나타나 일일이 개입하기를 시작하였다. 실정은 정산자의 실수로 인한 정산 오류로 판매율은 오히려 상승의 기세였으나 이를 증빙할 수 있었던 서류들은 모두 관리자의 미진으로 인해 보관되지 못하고서 소각 처리가 된 탓에 포괄적으로 공장의 통제를 받게 되는 것은 부진한 공장장을 대신하여 공장을 관리하는 이치마츠의 몫이 되었다. 늘 마주하던 군청색의 낡은 작업복이 아닌 짙은 남청색의 정장을 마주한 기분이란 가히 새로워서, 이치마츠는 혼이 날 것도 스스로 감각하고서 한참을 넋을 놓은 채 바라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잔뜩 날이 선 채로 얼굴을 짓이기는 구둣발 뿐이었다. 이치마츠는 첫 날 잔뜩 부기가 오른 탓에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하여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만 겨우 보행할 수 있었으며, 타 업체의 부품 공급 중단을 원인으로 삼아 잠조차 이루지 못한 채 홀로 꼬박 타인의 업무인 물품의 반품 처리를 도맡아 하여야만 했다. 이 후로는 공장의 매출이 부진할 적마다 그것을 원인으로 은밀히 호출되어, 카라마츠와 안면을 마주한 채 몹시도 불편한 면담을 가져야만 했으며 자세가 비딱하거나 눈을 재차 깜빡이면 바로 발길질이 향하였으니 이치마츠가 쉴 수 있는 겨를은 남아있지 않았다. 또한 얼마 전 같은 분야의 공장이 부근에 설립되어 매출의 절반가량이 줄어든 이래, 이치마츠는 평상보다 통찰력을 높여야 할 여부가 있었다. 






   계속되는 판매의 부진으로 인하여 그 날에도 어김없이 면담이 이루어졌다. 허리를 바짝 세운 채로 눈조차 제대로 끔벅이지 못한 채 식은땀만 삐죽 흘리고 있는 이치마츠와는 다르게 카라마츠는 그저 턱을 괴고서 좌불안석을 행하는 이치마츠를 주시하는 기색으로, 이치마츠가 꼼짝을 못하고서 홀로 버티는 것을 상당히 즐기는 듯 하였다. 결국 입술을 앙 물고서 자칫 삐끗하여 허벅지를 받치던 손아귀에 힘이 풀리면 곧장 실망하는 체를 하며 슬슬 지친 이치마츠를 농간하기를 시작 하였는데, 대개가 우려했던 바와는 달리 다친 곳 하나 없이 달이 중천으로 솟아오를 무렵에는 지친 낯빛을 하고서 돌아온 이치마츠는 그 이후로 직원들을 더욱 을러대고서 실정 존재하지 않는 적자를 메꾸었다. 없는 손실을 메꾸지 못한다면 또다시 죽도록 맞을테니, 그 후로는 이치마츠는 장부를 조작하는 한이 있더라도 기어코 악을 써야만 하였다. 






   경영자가 공장 업무에 일시적 개입을 해제함에 따라 공장 전체에 누적 되었던 긴장감이 일부 감소하였다. 하지만 그로 인해 재차 반복되는 근로자들의 업무 태만으로, 결국 그들을 대신하여 삼 일 가량을 철야 하였으며, 카라마츠를 다시 마주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반 개월이 조금 지난 이후였다. 이 날에는 공장의 벽 한 면에 붙여진 ‘흡연 금지’의 벽보마저 무시하고서 공장 내에서 흡연을 하고 있었으며, 몹시 불쾌한 기색을 하는 채로 공장 전체를 느긋이 둘러보고 있었다. 보고로 인하여 그 주위를 배회하던 이치마츠는 지긋이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놀라 곁을 살폈고, 곧 카라마츠가 자신에게로 넌지시 손짓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치마츠는 덜컥 가던 걸음을 돌려 곧장 카라마츠의 앞에 멈추어 섰다. 벽을 보고 선 듯 막연한 기세가 들어 점차 주눅이 들 즈음 이치마츠는 대뜸 말끔하게 웃음 짓는 그를 마주하였다.






   연신 웃음 짓는 그를 보고서 어찌 할 줄을 몰라 멀뚱히 선 채로 초조하게 서 있을 때, 카라마츠는 마치 웃어보라는 마냥 입술 끝을 비척거리며 웃는 시늉을 하였다. 머뭇거리며 당황해하던 이치마츠는 흘깃 그가 무심히 쥔 담배의 끝을 바라보았으며 끝내 입술을 추켜 웃음 지었다. 잠자코 바라보고 있던 카라마츠는 결국 참지 못하고 실소를 하였으며, 어느새 다가와 모자를 짓눌러 쓴 이치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무한테나 그렇게 웃어주지마. 머리를 쓰다듬던 손에 살짝 힘을 쥐고서 스스로 멀어진 카라마츠는, 곧장 주변인의 의복에 담배를 짓이기며 공장 입구를 나섰다. 일정에도 없이 불쑥 찾아온 것을 제외하고서는 달라진 것이 일변 없어 잠시 당황하였지만, 이래 자신과 일절 눈을 마주하지 않는 이들을 겪으며 결국 이것은 그의 배려가 아닌 일말 자신의 착각이었음을 단정하였다.







*




   타 업체의 판매 흥행에 따라 최근 상부를 드나드는 이치마츠의 발걸음은 가빠졌다. 그로 인해 어느 경우에는 이틀이 지나도 업무에 복귀하지 않는 일이 더러 있었으며 겨우 며칠 사이에 자취를 드러낸 경우에도 직원들의 사소한 개별 행위 하나에도 간섭하며 유독 좌불안석인 티를 내었다. 이것을 원인으로 삼아 공장 내에서는 일부 신빙성이 없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였는데, 그 중 일익은 이치마츠가 최근 유독 오른손을 심하게 저는 것이었으며 결국은 사람과 근접할 적마다 스스로 오른손을 감추어 무마하고자 티를 내었던 것이 실지 인정하는 셈이었다. 일부에서는 무리한 작업으로 인한 부상으로 잠정 짓고 있었으나 유독 카라마츠를 마주할 경우 자제하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것과, 최근 카라마츠가 이치마츠의 곁을 배회하며 한참을 지켜보았던 것으로, 아무리 문외한이라 하여도 잠정적인 상황을 모를 리가 만무했다. 또한 공장을 나서기 일전 잠시 카라마츠를 지나쳤다는 직원의 언사에서는 그가 꼬박 이치마츠와 눈을 마주치는 이들의 신분을 묻고 다녔다는 것에서, 반 개월 동안 수십 명의 직원이 교체된 것에 대한 의문 또한 일부 감소되었다. 두 가지의 업무를 교차하는 탓에 다망하지 않을 리 만무한 카라마츠가 어째서 공장에서 빈번히 노정하는지에 대한 원인은 대략 만인이 알고 있었기에, 화를 피하려 굳이 대화 하지 않는 이들로 인해 이치마츠는 홀로 고립되어 같은 일상의 나날을 보내었다. 하지만 타인이 잠시 지나쳤던 그의 얼굴은, 일말 어느 감정조차 느끼지 않는 듯 하여, 아무도 그에게 관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무엇이 되었든 담당 업무에 인력을 배치시키는 것 또한 ‘반장’이란 직책의 업무이기에, 이치마츠는 매번 새로운 이들과 접촉하면서도 애써 무감해지려 내색하였다. 그 도중 만난 것이 과연 유통과 관련된 업무가 처음이라며 낯설어 하였던 어느 낯선 소년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부품 조달이나 가벼운 업무 보고 등의 일처리를 시킬 용의였으나 초보인 것에 비해 능숙하고 민첩하여 결국은 이치마츠의 곁에서 그가 바쁠 적마다 역할을 분할하여 작게나마 업무를 도왔다. 처음은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과 오랫동안 대면하지 말라는 요구를 듣는 듯 하였으나 적응기가 지난 후에는 서서히 몇 마디씩을 흘리더니, 곧 이치마츠가 점차 대꾸하는 기색을 보이자 신이 나 이즈음부터는 은근히 밀착하여 여유가 생길 적마다 대화를 시도하고는 했다. 워낙 그가 건네는 대화가 가볍고 짧아 이치마츠 본인도 자각하지 못하고서 자주 대화하였으나, 저만치서 기척을 느끼고서 뒤를 돌아보았을 때에는 상당히 불쾌한 듯한 카라마츠가 어느새 다가와 인상을 찌푸리는 채로 은밀히 시선을 자신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그가 왼손에 가벼이 쥐고 있던 커피 잔은 이태리식으로, 카라마츠가 차를 딱히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굳이 그는 물 한 잔을 마실 경우에도 고집스럽게 티팟과 슈거 크리머까지 구비하여 놓고는 하였다. 가끔 경영을 위하여 타 관계자가 그와 대면할 적에 주로 건네었던 주제는 언제나 커피와 티에 대한 이야기였다. 물론 반절도 지나지 않아 카라마츠는 그에 대하여 흥미를 잃었으며, 대화는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진전 없이 마무리 되었다. 이치마츠는 빈 커피 잔을 기웃거리는 카라마츠를 향하여 몇 걸음을 가까이 하였으나, 카라마츠는 여전히 인상을 굳히는 채로 손을 설레 내저었다. 이 후에 곧장 손가락으로 바닥을 연신 가리키며 입술을 비척거리는 것이 어딘가 몹시 불만스러운 기색이었기에, 이치마츠는 숨소리조차 슬며시 숨기는 채로 고개를 숙였다. 그의 왼손은 여전히 작은 커피 잔을 쥐고 있었다.






“멍청해서 가끔은 가엾다고 해야하나.”

“….”

“아무 짐승에게나 눈길 주지 말랬잖아.”






   낮게 으르렁거리는 그를 향하여 이치마츠는 흠칫, 몸을 떨었다. 실은 몹시 여유로워 보였지만 애써 화가 난 체를 하며 느리게 눈을 끔벅거리거나, 낮은 숨을 내뱉으며 짙은 자연을 흩뿌리는 것도 실정은 두려워하는 이치마츠를 즐기기 위한 나름대로의 유희였다. 이치마츠는 연신 고개를 숙였지만 실정 잠자코 방관할 수는 없었다. 그저 자신과 접촉했다는 원인만으로 실직이 되어 부랑자 신세가 되거나 폐수를 관리할 적 몸에 서너 개의 공극이 뚫린 채로 하수구를 떠도는 이들을 잠자코 방관할 수조차 없는 형편이었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이치마츠는 결국 다짐한 듯 짧게 고개를 끔벅이며 서서히 무릎을 굽혔다. 느긋이 담배를 쥐고 있던 카라마츠가 황당하여 덜컥 고개를 드니, 그의 기세에 막연한 두려움이 앞섰지만 실정은 일어설 겨를조차 없어 이치마츠는 더욱 고개를 굽혔다. 이윽고 스스로 입 밖으로 내뱉은 것은 이번 한 번만 선처하여 달라는 가히 우스운 언사였으며, 그것에 사뭇 여유롭던 카라마츠는 어느새 담배 필터가 살갗에 닿아 탄내를 자아내고 있다는 것도 잊고서 낮게 몸을 떨었다.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는 이제 언뜻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오후 2시 28분. 모종의 지병을 앓는 그를 위하여 매양 그의 업무를 보조하는 비서가 약을 구비한 채로 집무실을 출입하는 시각이었다. 이치마츠는 제 손목께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초침을 바라보며 나직이 입술을 깨물었다. 카라마츠는 여전히 답변하지 않았으며 시계의 초침 소리가 또렷이 들릴 정도로 내부는 몹시 고요하였다. 마침내 시간이 흐르고서 집무실 문을 정중하게 두어 번 두드리던 여비서가 들어서자, 카라마츠는 곧장 쥐고 있던 커피 잔을 놓아 바닥으로 떨구었다. 곧 커피 잔의 파편이 바닥을 난잡하게 흩뜨리며 바닥을 적셨으며, 파편의 일부가 이치마츠의 얼굴 근처로 지나치며 어느새 얇은 자상을 자아내었다. 카라마츠는 굳이 턱을 똑바로 괸 채로 바닥을 향해 제 검지를 뻗었으며, 이윽고 맞물린 그의 두 입술에서는 나직이 이치마츠의 이름을 속삭였다.






“핥아.”






   두서를 잃은 그의 언사에 잠시 넋을 놓는 듯 했던 이치마츠는 어느새 흠뻑 젖은 자신의 주변을 바라보며 점차 카라마츠를 향해 점차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제 손바닥을 적신 무취의 액체를 바라보며 분노로 낮게 몸을 떨던 이치마츠는 끝내 여전히 무릎을 굽히고서 낮게 숨을 들이마셨다. 모욕적인 언사를 들으며 타인의 앞에서 짐승과도 같은 취급을 받은 원인은 과연 그의 이기심 때문이었으며, 이치마츠는 여전히 구두 굽을 놀리는 채로 바닥을 난잡히는 카라마츠를 향해 앞서  고개를 숙였다. 객관적인 입장으로는 이것이 그의 이기적인 훈육의 일부라고 판단하였겠으나 본연의 입장으로서는 그가 내린 나름의 배려였으며, 몇 차례의 접촉 끝에 의식한 이치마츠는 솟구쳤던 자신의 긍지를 내려야만 하였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이치마츠는 끝내 느리게 혀를 내밀어 탁한 바닥을 훑었다. 입 안으로는 짙은 비릿함이 느껴졌으며, 곧장 고개를 들고자 하였던 이치마츠는 덜컥 제 머리를 짓누르는 강제력에 삽시 바닥으로 엎어졌다. 다소 둔탁한 소음을 내며 바닥과 마찰한 낯으로는 날카로운 자상이 얽혔으며, 고통으로 잠시 신음 할 새도 없이 금세 턱 밑으로 임박한 구두 굽에 놀라 돌연 눈을 감았다. 감긴 눈은 차마 재차 뜰 수 없었으며, 맞물린 입술은 어느새 가늘게 전율하였다. 조롱이라도 하는 것 마냥 한참을 턱 끝에 머물러 있던 그는 이 후 발길을 거두고서 자신의 앞에서 사시나무 떨 듯 몸을 떠는 이치마츠의 머리를 차분히 쓰다듬었다. 이치마츠 씨. 직전의 행위와 확연히 다른 다정한 어조에 고개를 든 이치마츠는 문득 제 눈가를 스치는 손길에 재차 몸을 떨었다. 그 와중 꾸벅 고개를 주억거리며 답변하는 이치마츠를 보며 살포시 웃음을 짓던 카라마츠는, 시야를 넓혀 얼결 모든 것을 목격하고 있던 제 비서에게 눈짓 하였다. 놀란 그녀가 서둘러 아닌 체를 하고서 집무실을 나섰지만 필연 그것은 그들이 마주할 그녀의 마지막일 테며, 카라마츠는 맹수를 마주한 토끼마냥 밭고 있는 이치마츠를 오로지 자신만이 담아냈음을 느끼며 은근히 광괴하였다. 






“나는 당신의 웃고 있는 모습이 좋은데.”

“….”

“반장 씨. 다시 한 번 알려줄게. 당신 상사는 나야.”






   물정 모르고 시간 낭비할 나이는 지났잖아. 격려하는 듯 어느새 손을 내려 그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리던 카라마츠는 나긋이 기지개를 켜며 집무실을 나섰다. 잠자코 주저앉아 한참을 넋만 놓던 이치마츠는 어느새 시간이 꽤나 흘러 있음을 짐작하였고, 길게 늘어진 외투의 소매로 제 얼굴을 슬며시 닦는 채로 바닥을 짚고서 일어섰다. 난잡한 바닥을 치울 겨를은 없었으며, 근처의 세면대로 근접해 세안을 하고서 돌아간 공장에서는 여전히 긴장한 얼굴을 하고서 분주히 손을 움직이는 그가 있었다. 반가움보다는 안도감이 앞서 다른 무리에 섞여 좌불안석인 소년에게 천연스럽게 다가가 업무의 경과를 물으니, 힘없이 고갯짓을 하며 고개를 들던 소년의 얼굴에는 어느새 반가움에 점차 웃음이 만개했다.






   집무실을 나섰던 카라마츠가 들렸으리라 생각하였던 이곳은 그의 눈길만이 잠시 닿았을 뿐 발자취는 전혀 남지 않았으며, 오히려 소년은 그 잠시 마주쳤던 카라마츠의 인상을 기억하고서 은근히 자긍하였다. 이치마츠가 할당량 달성을 위해 근 7일간 철야로 고초를 겪고 있을 즈음 카라마츠는 돌연 나타났으며 사철 달갑지 않는 것은 매일반이었으나 보고하기 위해 그를 대하던 이치마츠는 그가 이전보다 더욱 암상궂은 인색을 하고 있는 것을 감각하였다. 담배를 쥐고 있는 왼손으로는 이전 보지 못했던 낯선 자상이 자리 잡고 있으니, 이치마츠는 이상 외에 차분한 카라마츠를 보고서 밭게 몸을 떨었지만 카라마츠는 어떠한 잠재적 행위조차 않고서 그저 망연히 이치마츠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




   직원의 미숙한 직무 처리로 인하여 기계 부품에 오른발을 차였다. 이를 최초로 목격한 이는 근래 잠을 이루지 못한 듯 초췌한 기색으로 공장을 배회하던 이치마츠로, 상황은 그 이전과 다를 경우가 없었으나 굳이 아픈 다리까지 굽혀가며 실수한 그를 위해 용서를 바랐지만 필사적으로 저항하던 그의 입가가 뭉개져 치아 서 너 개가 돌출되고서야 기어코 발질을 멈추었다. 긴장하여 평소에는 잘 내색하지 않던 오른손마저 분주히 움직여 일개 직원을 수습하려 하였으나 대들었다는 발칙한 명목으로 부하직원들의 앞에서 머리를 짓눌리며 온갖 수모를 겪는 탓에, 저항하다 도리어 다친 곳을 접질리며 결국은 넋을 놓고서 기절하였다.





   깨어보니 눈을 뜬 곳은 한 켠의 좁은 침대였으며, 카라마츠는 침대 끝자락에 느긋이 기대어 두 눈을 감고 있었다. 잠이 든 그에게 이불을 끌어 덮어주고서 상체를 움직여 제게로 닿는 벽을 길잡이삼아 어두운 방 안을 더듬거리며 나서려는 찰나 느껴지는 통증에 몸을 비척거리던 이치마츠가 신음하자 잠에 든 듯 하였던 카라마츠는 어느새 고개를 돌린 채 선명히 소리가 나는 방향을 응시하고 있었다. 놀란 이치마츠가 소리 칠 틈도 없이 성큼 다가온 카라마츠는 부기가 올라 보기 벅찬 그의 오른손을 냉큼 들었으며, 여지마저 주지 않은 채 헛웃음을 지으며 그의 손을 감싸 쥐었다.






“황당하군. 이게 과연 당신의 긍지인가.”

“….”

“반장 씨 아마, 오른손잡이였었지.”






   능청스럽게 질문하는 그가 몹시도 얄망궂다. 이치마츠가 소리를 내어 대꾸하자 곧 떨리는 손등을 쓸어 작게 입맞춤한 카라마츠가 슬며시 이치마츠의 두 눈을 마주했다. 나름 예쁜 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나직한 속삭임에 이치마츠는 문득 그를 처음 마주하였을 적이 회상되어 두려움에 작게 몸을 떨었다. 손가락의 일부 마디가 튀어나와 괴기스러워진 왼손을 바라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사실 그것은 의외의 동질감이었다.





   카라마츠는 재차 이치마츠를 훑으며 느긋이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터무니없이 투박한 손길이었다. 이치마츠는 전과 다르게 표정이 양순해진 듯한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오른손을 들어 그의 손길을 내렸다. 복종하지 않았다는 원인으로써 대뜸 범수가 날아올 듯 하였으나 의외로 그는 흐뭇하게 웃음을 짓는 정도로, 여전히 오른팔을 떨고 있는 그의 손에 주사 따위를 쥐어주고서 느긋이 숨을 들이켰다. 아플 때 그거, 동맥에 꽂아. 이치마츠가 무엇을 물을 겨를도 없이 기이한 소음을 내며 열린 철문 틈 사이로 상체를 기웃거리던 카라마츠는 곧 미련 없이 방을 나섰다. 그것은 단순한 위로도 위선도 아닌 직무적 위치를 고려한 그의 이기적인 계고였으니 이치마츠에게 판단할 여부는 없었다.






   이 후의 나날은 단조로웠다. 딱히 알람 소리가 없어도 새벽 6시만 되면 스스로 기상하여 준비를 마친 7시 즈음에는 공장을 배회하였으며, 대략 모든 이가 출근하는 9시가 되고서야 저 너머에서 나타나는 소년을 질타하며 시작되는 일과는 오히려 평이하였으나 소년의 미숙한 업무 처리로 인해 직접 창고를 돌아다니며 갖은 고생을 해야만 했다. 딱히 생각이 단순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최근 유독 무색한 티를 내는 탓에 일과 중 절반을 소년과 함께 있어야만 했으며, 유난히 재고나 손실을 회계하는 것에 취약하여 관리하지 않는다면 제 시간에 업무를 마치는 것이 힘들 지경이었다. 이것을 원인으로 그들은 줄곧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창고를 배회하였고, 창고 즈음이라면 카라마츠라도 쉬이 들어오지 않을 것이라며 장담하는 소년의 말에 마치 죄를 짓고서 은둔하는 은둔자가 된 것 같아 기분은 묘하였으나, 타인의 이목을 벗어나 고립된 이곳을 좋아하는 소년을 보며 이치마츠는 결국 함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을 자처하였다.






   소년은 유독 더위에 지친 이치마츠에게 밀착하는 기색이었다. 낡고 닳아 늘어진 옷자락으로 흠뻑 젖은 얼굴을 닦던 이치마츠는 최근 항상 회계와 엇나가는 잔고량을 체크하며 좌불안석에 몹시 불안해하였으며, 평상에는 지긋하게 괴로워하던 소년마저 무시한 채로 어떻게든 할당량을 채우려 직원들을 닦달하기마저 하였다. 잠자코 상황을 지켜보며 어떻게든 소년이 무마하려 하였지만 결국 심적으로 궁지에 몰린 이치마츠가 일괄 잘못을 모두 소년의 몫으로 전가하며 성을 내자, 잠자코 경청하던 소년은 홀로 울먹이는 채로 공장을 벗어나 지하로 향했다. 방향은 늘 그들이 향하던 위치였으며, 다급해진 이치마츠는 지상에서의 업무가 아직 남아 있음에도 소년에게로 달려가 굳게 잠긴 창고의 걸쇠를 열었다. 열렸다? 앞서 소년이 들어갔음에도 만무하고 굳게 잠겨있던 것이 요란한 마찰음을 내며 기어코 열렸으나, 창고의 문 틈새로는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으며, 당황한 이치마츠가 주변을 살피려 등을 돌리던 찰나 곧장 둔중한 소음과 함께 무언가로 머리를 가격당한 채 바닥으로 엎어졌다. 가격을 당한 부위에서부터 이마 아래로 흐르는 선혈에 잠시 아른거리는 정신을 놓을 법도 했다가, 저 너머 언저리에서부터 에도는 섬뜩한 발걸음 소리에 기어코 상체를 뻗어 다가오는 이의 한 쪽 다리를 붙잡고서 처절하게 매달렸다. 젠장, 왜 이래! 덜컥 다리를 잡히자 당황한 듯한 그의 다급한 비명과 함께 오른팔을 향하여 쏟아지는 발길질에 반항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서 결국 이치마츠는 저 너머로 엎어지며 아득해지는 정신을 놓았다. 어딘가 낯이 익은 목소리라고 생각하였다.








-




   이치마츠는 낡은 창고의 한 켠에서 눈을 떴다. 걷어차이던 도중 운이 없게도 눈가 근처를 스친 것인지 한 쪽 눈은 붉은 부종이 생겼으며, 몸은 속박 없이 자유로웠으나 오른팔로는 더 이상의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것이 어떤 상황인지 판단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으며, 느리게 바닥을 기어 문 근처에 임박한 이치마츠가 덜컥 손잡이를 잡아 쥐었지만 문 틈새로 일말의 빛만이 드리울 뿐 이치마츠의 여력만으로는 미동하지 않았다. 힘없이 재차 바닥으로 엎어진 이치마츠가 겨우 고개를 들어 겨우 제 몸이 들어갈 수 있는 너비의 환풍구를 바라보며 그 높이를 어림잡고 있을 즈음, 어느덧 수를 가늠할 수 없는 구둣발 소리가 점차 근접하고 있음을 감각하였다. 무엇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덜컥 열린 문의 너머로는 몸을 낮게 떨고 있는 소년이 있었으며, 눈만 겨우 끔벅이는 채로 소년만을 바라보고 있는 이치마츠를 보며 한달음에 다가서 결국 울음을 쏟기 시작하였다. 여전히 감각이 없는 오른팔을 붙잡고서 한탄하는 소년의 손길을 따라 잠자코 이끌리며 문득 바라본 너머로는 어째서인지 낯선 발자취로 하여금 난잡하게 얽혀있었다. 이치마츠는 재차 소년을 바라본 후 소리를 내어 물었다.






“혼자야?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고?”

“난리도 아니에요! 카라마츠 님이 반장님을 찾고 계셔요.”






   은연 중 안심할 수 있었던 원인은 과연 익숙한 이름을 들어서였을까. 이치마츠가 작게 숨을 뱉어내며 안도하자 슬며시 웃음 짓던 소년이 곧 상처를 살펴야겠다며 그의 상의를 점차 걷어내었다. 마침내 일부가 붉게 물든 와이셔츠만이 드러나자 들뜬 숨을 내쉬던 소년은 곧 짐승마냥 달려들어 그의 목덜미를 물었으며, 정신을 차린 이치마츠가 비로소 발길질 하였지만 소년은 일말 비척거릴 뿐 이치마츠의 목덜미에 깊게 잇자국을 남겼다.






   결국 마지막까지 행복해질 수 없는 이유는 스스로의 방자함 때문이었을까. 그들 중 일부가 하체를 드러낸 채로 다가오는 것을 마주한 이치마츠는 결국 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차라리 이대로 시간이 영 멈추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였다. 주체하지 못하고서 요동치는 수 마리의 짐승들에게 이끌려 탐닉당하고 있을 즈음, 한 발의 총성과 함께 목덜미에 고개를 깊게 묻고 있던 소년이 일말 피를 토하며 바닥으로 엎어졌다 몸의 일부가 겹친 채로 쓰러진 소년으로 인하여 얼굴에 흠뻑 피를 뒤집어 쓴 이치마츠가 놀라 일말 몸을 가늘게 떨고 있을 겨를에, 또 다른 총성이 울리며 이치마츠에게 가장 근접해있던 다른 이가 곧장 이마를 관통 당하는 채로 쓰러졌다. 삽시에 둘이나 죽어나가자 놀라 방황하던 그들이 황급히 단총을 찾으며 허리를 달싹였지만 채 장전도 하기 전 몸의 일부가 꿰뚫리는 채로 바닥에 짙은 핏자국을 남겼다. 두 눈을 감은 채로 애써 사라지지 않는 두려움을 무마하던 무렵 불현듯 어깨를 감싸는 손길에 놀라 일말 짧은 신음과 함께 고개를 들었다. 이치마츠가 저항하는 기색에 잠시 주춤하던 카라마츠가 상당히 지친 안색으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등 너머로는 애초 아무 일도 없었던 것 마냥 고요하였으며 카라마츠는 누구의 것인지 모를 피를 흠뻑 뒤집어 쓴 채로 말끔히 웃음 지었다. 이제는 쉬어도 돼. 느긋이 쥐고 있던 담배를 건네어 그의 맞물린 입술 사이로 묻는 카라마츠를 보며 이치마츠는 점차 온몸이 나근해지는 것을 느꼈다. 피지도 못하는 담배를 떼어내지 못하여 이따금 코끝을 찡그리던 이치마츠는, 일말 서서히 눈이 감기는 것을 감각하다 문득 기척이 느껴지는 그의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몸을 심하게 비척이는 채로 일어서 등을 보인 카라마츠를 향해 총구를 겨누는 낯선 그를 보며, 이내 이치마츠는 조용히 두 눈을 감았다.






*




   이치마츠는 또다시 자신의 낡은 방 한 켠에서 눈을 떴다. 달라진 것이 없는 일상이었지만 이치마츠는 평상보다 조금 늦장을 부렸으며, 일곱 시가 되었을 즈음에는 겨우 침대의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자신의 발끝만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홉 시가 된 시각에는 세안을 하려 세면대로 향하였고, 그 후로 돌아가는 수십 개의 라인들을 바라보며 그저 망연히 넋을 놓았다. 이전부터 줄곧 마주치는 직원들은 모두 아는 이가 없이 초면에 어리숙한 이들 뿐이었으며, 오히려 아는 체를 하는 면식이 있는 이들을 기피하며 스스로 고립되기를 택하였다. 실정은 달라진 것이 없는 일상이라 자부하고 있었으나 감소된 인력으로 인하여 업무량은 이전보다 더욱 부진하였고, 느리게나마 회복되고 있는 다리와는 다르게 오른팔은 여전히 감각이 없어 주먹 따위로 수십 번을 내리쳐도 느껴지는 고통은 일말 없었다. 이 후 식욕은 점차 감퇴되어 식사를 하는 경우마다 도리어 속을 게워내기도 하였고 최근에는 원활하던 시력마저 감퇴되는 것이 느껴졌다. 결국 이것들의 영향은 여전히 그에게 있어 여리고 어린 소년으로, 이치마츠는 자신을 배반하였던 소년을 원망하기는 고사하고 그리워하며 일별 앓고 있었다고는 하나, 실정 이것은 공장을 감도는 입소문이었을 뿐 이치마츠는 그 어떠한 감정도 결코 드러내지 않았다.






   공장의 지분율은 감소하였고 압박과 관리가 없는 이래 직원들은 나태해졌으며, 이 후 이치마츠는 어떠한 업무에도 개입하지 않은 채 방에 고립되어 나오지 않는 독단적인 행위들을 행하기 시작하였다. 끝내 책임자가 나서 끈질기게 문을 두드렸지만 이치마츠는 결코 나서지 않았으며, 결국 직원들의 나태와 이치마츠의 일방적인 업무 거부에 의해 공장은 소수의 라인을 중단하였다. 와중 이치마츠는 한 번의 자살 시도를 하였는데, 항상 그의 탁자에 놓여있었던 불명의 주사를 대뜸 체내에 주입하였던 것이 과연 그 근거였다. 혈관의 위치도 가늠하지 않고서 무식하게 살갗에 박아 발작을 일으킨 것이 목격이 되어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실정 약의 성분은 단순한 마약에 불구하였다.






   이치마츠는 그 무엇도 내색하지 않았다. 꿈에서 깨어났을 때는 일말의 갈증을 느꼈고, 유난히 가벼워진 자신의 오른편을 바라보며 망연히 두 입술을 맞물렸다. 이 후에는 어느 누구와도 접점하지 않았다. 업무 간 필요한 의사소통마저 고갯짓으로 대신하였고, 다리마저 질질 끌며 공장을 배회하는 그는 동료들 간 묘한 섬뜩함을 자아내었다. 일전 호기심을 가지고 그에게 접근하였던 이들 대개가 얼마 지나지 않아 몹시 겁을 먹은 채로 돌아와 이 후로는 그에게 한 번의 관심도 가지지 않았다. 그것이 이치마츠에게는 이제 익숙한 일과가 되어 오후 아홉 시가 되면 침대에 누워 반지하 너머 머리맡으로 스며드는 달빛에 지긋이 눈을 감은 채로 하루를 지새웠다. 살아있는 것조차 망각하여 가끔은 세면대 앞에 서서 죽은 사람마냥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며 두 볼을 쥐고 늘이기도 하였으며, 미세하게 느껴지는 통증에 일말 안심하다 허탈함에 홀로 헛웃음을 짓기도 하였다. 결국 공장으로 복직한지 두 달이 지나지 않아 이치마츠는 한계를 느꼈으며 이내 공장장에게 업무 태만을 원인으로 직무 해고를 통보 받았다. 미련 따위는 일말 없었다.






   통보 받았던 기간으로부터 약 이 주일, 이치마츠는 고향으로 돌아갈 채비를 일찍이 마치고서 남은 기간을 침실 한 켠에 처박혀 미동하지 않았다. 해가 지고 달이 차오르는 것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겨 있던 그는 이내 잠을 이루기 위해 침대에 머리를 기대고 누웠으며, 이윽고 다른 날과는 다르게 유난히 몰려오는 졸음에 넌지시 두 눈을 감았으나 결코 잠을 취할 수는 없었다. 그윽했던 달빛이 지고 어느새 선명한 여명이 떠오를 즈음, 잠자코 눈을 감고 있었던 이치마츠는 느닷없이 열리는 방문에 화들짝 놀라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문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었지만 기척이 느껴지는 것을 감각할 수 있었으며, 잔뜩 몸을 굳히고서 움직이지 못하던 이치마츠는 넌지시 자신의 이름을 속삭이는 목소리에 잠재적으로 긴장이 풀린 채 그 너머를 바라보았다. 반장 씨. 그것은 이치마츠가 이다지 기다렸을 그리움이 서린 목소리로, 카라마츠는 문에 등을 기댄 채로 느긋이 담배를 쥐고 있었다. 담배를 잡고 있던 손은 오른손으로, 일말 이치마츠는 의구심이 들었으나 카라마츠는 유유히 손을 번복하여 마치 안심이라도 시키려는 듯 담배를 그러쥐었다. 






“반장 씨 직무 태만으로 조사 좀 받아야 할 것 같은데.”






   그를 마주하며 다른 무엇보다 느껴지는 그리움은 과연 그에게 느꼈던 애증의 일부였을까. 짙은 자연을 흩뿌리며 바닥으로 담배를 지져 끄던 이는 침대와 탁자 하나가 겨우 들어선 비좁은 방 안으로 들어섰다. 이 후 탁자 밑을 그득히 채운 짐 가방을 발견하고서 능청스럽게 다가가 그의 귓가에 나긋이 속삭였다. 일, 그만두려고? 좁은 방 한 켠에 울려퍼지는 꽤나 근사한 목소리에 이치마츠는 잠시 대답을 망설였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덜컥 화를 낼 것이라 짐작했던 것 과는 다르게 그는 여유로운 듯 짐짓 고개를 갸웃거렸고, 어느새 이치마츠의 곁에서 밀착한 채 그를 바라보며 작게 웃음 지었다. 찰나 가슴에서 일렁이는 무언가, 이전에도 언뜻 느낀 감각이 존재했다. 그러자 덜컥 객기가 생긴 이치마츠는 곧장 카라마츠를 바라보았으며, 의외인 듯 한동안 대꾸하지 않던 카라마츠는 이내 유순하게 웃음 지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전에 기초부터 다시 배워야겠어. 짓궂게 농담을 건네던 그는 이내 쓰다듬던 이의 머리칼을 살짝 쥐어 잡았으며 이치마츠가 고통에 작게 신음하자 곧 다시 웃음 짓던 그가 이치마츠의 손등을 향해 짧게 입맞춤 하였다. 바라지 않았던 것에 대해 갈구하게 되는 것은 과연 어떠한 감정일까. 이치마츠는 느리게 두 눈을 감으며 짧게 회고하였고, 이내 느리게 두 눈을 끔벅였다. 반장 씨. 다시 낮게 속삭이는 그에게, 이치마츠는 소리를 내어 대꾸한 채 잠시 회상한다. 자신이 원했었던 다정함은 결코 허무하고도 맹랑한 것이 아니었음을.






   이 후로 달라지는 것은 과연 무엇이 될까. 이치마츠는 불쾌한 듯 짐 가방을 건드리는 그를 무심히 바라보았다. 떨리던 호흡은 이전보다 점차 안정 되었으며, 이치마츠는 어느새 또렷해진 시선으로 주변을 순시하였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어엿한 새벽이건만, 이치마츠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절룩거리는 걸음걸이로 침대에서 일어선 이치마츠는 곧 한 걸음을 앞서 카라마츠에게로 향했다. 늦은 새벽임을 고려하여 평상답지 않게 돌아갈 생각을 하였던 카라마츠는 어느새 눈앞에 마주한 이치마츠에 잠시 당황한 듯 하였으나 이내 그의 시선을 또렷이 마주하였다.






“당신에게는 폄직도 사직도 없는거야.”

“….”

“이제는 끝났어. 당신을 괴롭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정말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일까. 이치마츠는 의외로 납득한 듯 힘없이 고개를 주억거린 후 등을 돌려 다시 제 침대에 기대어 앉았다. 내일 봐. 나직이 귓가에 닿는 목소리에 이치마츠는 대꾸하는 채로 서서히 눈을 감으며 너머로 등을 돌렸다. 그로부터 점차 목소리는 멀어졌으며, 귓가에는 곧 구둣발 소리로 그득했다. 한참을 맴돌던 발자취 소리는 그의 잠결을 따라 서서히 멎어갔고, 이치마츠는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며 슬며시 눈을 감았다. 






“잘 자.”





   본인만큼 안이하고 허술한 문은 달콤히 속삭이던 그를 마지막으로 곧 굳게 닫혔다. 어째서인지 금일은 좋은 꿈을 꿀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기타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온님 커미션 카라이치  (0) 2016.06.26
카라이치  (1) 2016.06.11
카라이치  (0) 2016.05.08
쥬시이치카라  (0) 2016.04.30
카라이치  (0) 2016.04.17

+ Recent posts